법문듣기
 
대중법문

법우님, 불안하십니까?

문사수 2009.09.14 조회 수 27802 추천 수 0

불법(佛法) 속에 계시니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이 세상에 운명을 타고 나서 산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팔자라고 말합니다.
또 신이 만들어준 인생을 산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니 운명이나 팔자의 지배를 받고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은연중에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타파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내 밖에 있는 신이나 창조주 혹은 운명이 내 인생을 좌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내 밖에 있는 어떤 존재도 내 존엄성을 지배할 수 없고, 손상시킬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탄생선언인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의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선언으로 인간을 신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또한 우리를 구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환경으로부터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신의 세계로 복귀해야 한다거나 무조건 따라야 할 운명도 없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생명의 무한가능성을 일깨워 주시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인격의 주체로서 무한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신념 속에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법회에서는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본적지, 우리 모두의 고향이 극락세계’라는 뜻입니다. 이는 극락세계가 새삼스럽게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 본래 우리들의 고향임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본래 우리들의 고향이 극락세계인데, 왜 참고 견뎌야 하는 사바세계에서 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들의 걱정, 근심, 불안한 마음들은 몸을 기준으로 생기는 것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더욱 영광스럽고, 어떻게 하면 더 쾌락을 즐기고, 어떻게 하면 남들이 행복하다고 우러러 보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에 골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 그런 것들은 모두 몸뚱이를 중심으로 나타난 가짜니까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래의 참생명은 불생불멸(不生不滅)입니다.
이 세상에 새삼스럽게 태어나는 법이 없는 영원한 과거로부터 있어온 생명이고, 따라서 언제 없어져 버릴 것도 없는 영원한 미래를 약속받고 있는 생명이라고 알려주십니다.

또한 우리의 참생명은 불구부정(不垢不淨)입니다.
어딘가 때가 묻었기에 그 때를 없애야 하는 생명도 아닙니다. 본래부터 절대생명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한 생명으로 살고 있는 것이어서 내 밖에 있는 남들과 투쟁해야 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았기 때문에 죄를 졌다거나, 남들이 나에게 해를 끼치니 남이 밉다거나 하는 그런 생명이 아닙니다. 우리의 참생명은 본래부터 청정무구하고 맑디맑으며 한계가 없는 무한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참샘명은 부증불감(不增不減)입니다.
새삼스럽게 어떤 것을 가져다 붙인다고 해서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수행을 많이 해서 생명의 능력을 늘이겠다고 해서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본래부터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늘어날 것도 줄어들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남이 나의 생명에 손상을 끼친다거나, 재산에 손실을 준다거나, 명예에 손상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남들과 싸워서라도 내가 좀 더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설사 그렇다 손치더라도 우리의 본래 생명은 새삼스럽게 늘어난다거나 줄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생명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무슨 인연으로 금생에 나무아미타불 공부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가끔 임종법문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가보면 임종을 눈앞에 둔 분들이 통증 때문에 무척 괴로워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극락정토 법문을 들려드리고, ‘나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이라는 뜻과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같이 부르면 통증이 거의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통증은 몸의 아픔보다는 마음의 공포심 때문에 발생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일생이 주마등처럼 모두 나타나는데, 사실 우리가 잘한 것이 얼마나 됩니까? 잘못한 것이 더 많지요. 이렇게 잘못한 것 때문에 지옥에 간다는 공포심과,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 떠나야한다는 애착심,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 가는 공포심 때문에 몸뚱이를 떠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몸뚱이에 매달리는 집착심 때문에 고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함께 염불하며 정토법문을 들려주면 공포심이 없어지면서 통증이 깨끗이 사라집니다. 그러니 임종을 맞이하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염불을 하면 살아있는 동안에 공포심도 없어집니다. 또한 요구하는 마음도 점점 사라집니다. 초조했던 마음도 전부 부처님께 맡겨버렸으니 편안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언제 죽음이 닥칠지라도 목숨을 마치면 그대로 극락에 가는 것이므로 죽음 앞에 당당합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려 할 때 날씨가 꾸물꾸물하면 우산을 가지고 갈지 말지 망설입니다. 그래서 우산을 가지고 나갈 때가 있고 안가지고 나갈 때가 있는데,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깜깜해지면, 우산을 가지고 나간 사람과 안가지고 나간 사람의 심리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우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비가 오든지 말든지 덤덤합니다.

염불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때 어떤 경우를 당할지 모르지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있는 사람은 극락이 고향임을 알고, 여기서 목숨이 끊어지면 극락에 가는 것을 알므로 공포심이 없습니다. 하물며 죽게 되었을 땐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서 항상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상황이 왔다고 해 봅시다.
겉으로 보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이나 안 부르는 사람이나 죽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죽는 것 자체에 차이가 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별안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이렇게 남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꽉 차서 죽음에 이르면 갈 곳이 어디겠습니까? 거기에 나타나는 것이 지옥입니다. 지옥이라는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원망하고 남을 미워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마음으로 꽉 차있는 그 마음의 상태가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때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했더라도 죽음의 순간에 남을 원망하면 그 사람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은 닥치는 상황 모두를 다 업연(業緣)으로 인정하고, 또한 내 본적지가 극락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출장 나와서 살았는데 이제 비행기 사고를 당해 다시 고향인 극락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니 공포심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래서 이 공덕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직장 다닐 때 승진을 앞두고 모략에 의해서 사표를 내고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같이 사표를 쓰게 된 사람과 저는 정말 모범적인 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나게 되어서 그 사람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늦봄에 꽃이 지는 것은 폭풍우 때문이 아니고 질 때가 되어서 지는 것입니다.
지는 꽃은 폭풍우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곳을 나가서 굶어죽을 사람이라면 여기 있어도 굶어죽을 것이고, 만약 이 안에서 밥 먹고 살 사람이라면 밖에 나가도 살 수가 있을 터이니 그렇게 화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염불하십시오.” 하였더니 그 사람은 깜짝 놀라며,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마음이 태연할 수가 있느냐?” 고 도리어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하고 싶으면 불법(佛法)을 믿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실지가 그러합니다.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내가 부처님 품안에 있다고 확실히 알면 당황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공덕입니다.

법우님들께서도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임을 믿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이 염불신앙이 참으로 수승한 수행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 걱정들 말고 부지런히 나무아미타불 염불합시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법문들으신 소감, 댓글 환영합니다~~~   emoticon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