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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뿔 위에서의 다툼

紫庵 2012.04.21 조회 수 5441 추천 수 0

달팽이 뿔 위에서의 다툼

 

어느 생물학 교실의 현미경 밑 세계. 한 방울도 안 되는 시료 속에서 수만, 아니 수십만의 대장균과 구균 등이 백혈구와 뒤엉켜서 먹고 먹히는 싸움으로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생물학도가 보기에는 참으로 하찮은 것들이 하찮은 것을 놓고 하찮은 다툼을 하고 있는 광경이다. 어느 편이 이긴들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래 보았자 종말은 몇 시간 앞이 고작인데….

 

실험대 옆 휴지통에 신문지가 쑤셔 박혀 있다. 누군가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처박아 넣은 것 같다. 얼핏 '지역분할….' 어쩌고 한 기사제목이 보인다. 선거를 계기로 이 좁은 나라가 정치인들의 편 가르기, 세력권 차지하기에 온통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왜들 이럴까? 무엇이 그리 소중하기에 무엇이 그리 차지할 값을 지니고 있기에 그토록 눈에 불들을 켜고 다투는 것인가? 이 세상에 과연 다투어서 차지할 만한 가치를 지닌 것이 있는가? 또 가치라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들이 보기에는 세균들이야 미물 중에서도 미물들이다. 미크론 단위의 그들에게는 한 컵의 구정물이 온 세상으로 보일 것이며 짧게는 몇 분의 생존기간밖에 갖지 못한 그들에게는 1주야가 영겁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보기에는 그들은 역시 찰나와 같은 생을 명멸하는 미물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을 하찮게 여기는 인간들은 그래도 될 만큼 정말로 대단한 존재인가? 누군가가 말하기를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고 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잠깐' 사이에 너무 오만해졌다. 현생인류가 나타난 지 10만 년 정도.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인간들이 세균의 생존기간을 보는 것이나 진배없는 잠깐 사이에 말이다. 그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망각한 채 "자연을 정복한다."고 주제넘게 만용을 부릴 만큼 건방을 떨고 있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정말 그럴 수 있는 존재인가?

 

천문학의 성과에 따르면 인간이 세상이라고 하는 지구는 태양계 속의 한낱 떠돌이별에 지나지 않으며 그 태양계는 무수한 성운들 중의 하나인 은하계의 중심에서도 3만 광년이나 떨어진 변두리에 있다. 안드로메타 성운까지는 270만 광년이나 되며 아주 멀게는 물경 16억 광년 밖에도 다른 은하계가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지구란 존재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어느 정도인가? 그 위에 붙어 있는 인간이란 존재들은 또 어떤가? 인간이 보는 세균들은 오히려 큰 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주제에 제대로 보아야 할 것은 못 보고 눈앞의 '구정물'을 차지하기 위해 시기와 다툼을 벌이고 찰나적인 희로애락에 떠밀려 한 생을 마친다. 개체나 집단이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

 

일찍이 현미경도 망원경도 없던 그 옛날 옛적에 이미 대진인(戴晋人)은 와우각상의 쟁패(蝸牛角上 爭覇)를 들어 위나라의 혜왕에게 세상사의 부질없음을 갈파했는데 「달팽이 뿔 위에서의 싸움」에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호모 사피엔스란 중생들이 겹겹이 무명에 싸여 있는 터에 오만하기까지 해서 그렇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신기루 쫓아가듯 한다. 무엇을 착각하고 있으며 어떻게 보아야 옳은가?

 

현대문명이라는 것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수학과 물리학의 근본을 한 번 살펴보자. 유크리트이래 공간의 형태를 다루는 기하학은 점에서부터 출발한다. 점의 이동결과가 선이고 선의 이동결과가 면이며 면의 이동결과가 입체라고 이해하고들 있다. 그런데 점 자체가 실재한다면 이미 점이 아니라 면이다. 점이란 없다. 없는 것을 있다고 보자는 인간들의 약속일뿐 이다.

 

수는 어떤가? 10진법이든 12진법이든 20진법이든 모든 수의 시작인 1을 놓고 보자. 1이라는 것이 실재한다면 쪼갤 수 가 있다. 쪼갤 수 있는 것은 여러 개의 집합일 뿐 이미 1이 아니다. 그 역시 1이라고 보기로 하자는 인간들의 약속일뿐이다. 공간의 실체는 '구장부득장 구단부득단(求長不得長 求短不得短)'이며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이다.

 

시간은 또 어떤가? 물리학적인 시간이란 변화를 전제로 하는 개념인 동시에 거리를 달리 표현한 개념이다. 그러나 변화를 변화로 파악할 정지된 기준점이나 거리의 시점이나 종점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저희들끼리 약속한 잣대만이 있을 뿐이다. 시간의 실상은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이고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다.

 

그런데도 우주의 미물들 가운데 하나인 호모 사피엔스가 저희들이 직선으로 보는 것을 물고기들이 곡선으로 본다 하여 타박할 수 있으며 하루살이들보고 너희들의 삶도 삶이냐고 멸시할 수 있을까? 물고기들은 그런 눈을 갖고도 물 속에서 부딪치지 않고 잘도 헤엄쳐 다니며 하루살이들은 그런 삶 속에서도 종족을 잘도 이어가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나 그들이나 5십보 100보인데 인간들이 너무 약삭 바르기만 한데다가 오만하기까지 하다. 다만 인간은 스스로 하기에 따라서 무명을 벗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미물들과 다르다.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고 바로 행하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간곡히 말씀하셨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퍼온 글: 월간 佛光 19196년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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