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아문
 

여래가 세상에 상주하시는 까닭

정희석 2006.03.25 조회 수 34537 추천 수 0
-일시 : 2006.3.19.일.보은법회
-법사 : 정신법사
-지역 : 고양법당


여래가 세상에 상주하신다는 말은 여러분이 많이 들어본 법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여래를 친견하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왜 우리는 부처님과 보살을 친견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부처님 일대기 중 항마성도 부분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왕의 온갖 협박과 유혹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궁극의 도를 이루신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으신 내용을 복기하십니다.

복기 후에는 그 깨달음의 내용이 중생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워 오히려 부처님의 법을 비방하는 죄업을 짓게 될 것을 염려하여 전법에 나서지 않고 그대로 열반에 드시려하십니다.

이 때 그 유명한 범천의 勸請이 있게 됩니다. “중생요익을 위하여 열반에 들지 마시고 미묘한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옵소서” 라는 이 범천의 권청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이 바로 오늘 법문의 주제입니다.

즉 우리의 요청이 없으면 부처님의 응답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勸請을 해야만 우리는 부처님을 만날 수 있으며 이것은 또한 발원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무한능력자로서 이미 우리 곁에 와 계신 분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권청과 발원이 없다면 우리는 부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바세계에서 괴로움에 직면하고 있을 때 이 괴로움을 진솔하게 인정하고 그 괴로움 속에서 마음이 휘둘리지 않으면서 부처님이 세상에 상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그래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원을 성취하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미 와 있는 방송국의 주파수를 다이얼로 맞추어야 하는 것과 같이 권청에 의해서 그리고 구체적인 발원에 의해서 우리는 비로소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세상에 상주하시는 까닭의 진정한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보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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