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正覺)을 성취한 그 깨달음은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합니다. 풀이하면 무상(無上)·정등(正等)·정각(正覺)으로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가 본래 부처님생명으로서 다른 어떤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위없는 절대의 존재며[無上], 그런 절대적 존재로서의 부처님생명이 당신만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를 통틀어서 평등한 가치를 지니며[正等], 나아가 모든 존재가 온전히 반야바라밀[아미타생명]의 존재임[正覺]을 일깨워 주신 내용입니다. 이 같은 생명의 진실 내용을 담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살펴보면 진리생명이란 오직 1인칭의 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본래는 온 우주를 통틀어서 오직 부처님생명 밖에는 없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범부 중생들은 이러한 생명 내용에 대한 무지(無知)로 말미암아 나와 세계를 분별하고 그로 말미암아 내 생명이 따로 있는 것으로 여기며, 또한 나와 상대화된 다른 존재를 파악하고 이해하며 세상을 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상대화되어진 세계 속에서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소유에 대해서 집착을 하고 그 집착되어진 생명과 존재에 대해서 긴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온 힘[業力]을 쏟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중생의 인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지송하고 있는 『반야심경』의 가르침을 의지해서 살펴보면, “관자재보살님은 ‘반야바라밀’을 깊게 행하므로 오온(五蘊)이 공(空)함을 온전히 비추어 보고 고통과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라고 법문을 주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더 풀어서 설명을 하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깊이 의지하여 수행하므로 지금까지 나라고 여겨왔던 중생생명이 본래 있지도 아니한 허망된 것임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스스로에게 얽매이게 했던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을 멀리 떠나 절대 안심을 얻게 되었느니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보살은 언제나 반야바라밀을 의지하는 까닭에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는 까닭에 공포심이 없고, 뒤바뀐 헛된 망상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마침내 열반을 성취하게 된다고 법문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참생명인 ‘나’ 즉 부처님생명만이 진실한 것이고 우리가 나라고 집착하고 있는 중생생명은 착각이고 참된 것이 아니며 인연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나에 대한 집착심이 허망분별에서 파생되어진 그릇된 인식[선입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그릇된 인식의 기반을 부처님께서는 오온(五蘊)이라고 설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교리적 설명을 피하고자 오온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피하면서 이해를 돕고자 간략히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온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다섯 가지의 온(蘊:선입견의 쌓임)으로 대상과 세상에 대한 견해, 매 순간 느끼는 감정, 경험, 의지, 지식 등은 바로 오온으로 파악되어진 나와 세상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온은 바로 관념이며, 편견이며, 선입견으로 똘똘 뭉쳐져서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는 우리들의 신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오온의 마음을 나[我]라고 여기며 일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온으로 파악되어진 다시 말해서 분별심으로 이해되어진 나와 세상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고 뜻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대유한의 삶이 전개되어지게 된다고 일깨워 주고 계신 것입니다.
불교의 법문과 수행은 바로 이 같은 오온을 바르게 인식케 하고 그릇된 관념과 선입견을 벗어나게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법회에서는 올바른 믿음을 일으키게 하고 본래 참생명의 자리에 나아가게 하기 위해 염불(念佛)을 수행하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염불은 오직 참생명인 부처님생명 만이 실재함을 받아들이는 마음챙김 수행입니다. 지금 이 순간 진실생명인 부처님생명만을 받아들이는 수행이 바로 염불이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는 현상은 지금 이 자리에 온통 비의 기운이 충만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참생명에 대한 법문을 듣고 작은 믿음 일으키고 염불을 모시는 연유는 온 천지에 충만 되어 있는 부처님의 자비원력 즉 반야바라밀이 우리에게 작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지금 처해 있는 현실적 사실에 집착하여 마음 혼란스러워 하기 보다는 인내심을 지니시고 온전히 부처님의 법문에 귀를 기우려 염불 수행을 지성스럽게 하다보면 부처님의 법문이 우리들의 관념으로 이해하는 마음 단계에서 진일보하여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정견(正見)이 생기게 됩니다. 그때야 비로소 중생생명이 무아(無我)임을 바르게 믿어지게 됩니다. 관념으로 대하던 세상에서 비로소 점점 벗어나 참생명의 삶은 본래로 살아왔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염불 정진만이 진실한 것임을 분명히 믿고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범부 중생들은 이러한 생명 내용에 대한 무지(無知)로 말미암아 나와 세계를 분별하고 그로 말미암아 내 생명이 따로 있는 것으로 여기며, 또한 나와 상대화된 다른 존재를 파악하고 이해하며 세상을 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상대화되어진 세계 속에서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소유에 대해서 집착을 하고 그 집착되어진 생명과 존재에 대해서 긴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온 힘[業力]을 쏟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중생의 인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지송하고 있는 『반야심경』의 가르침을 의지해서 살펴보면, “관자재보살님은 ‘반야바라밀’을 깊게 행하므로 오온(五蘊)이 공(空)함을 온전히 비추어 보고 고통과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라고 법문을 주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더 풀어서 설명을 하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깊이 의지하여 수행하므로 지금까지 나라고 여겨왔던 중생생명이 본래 있지도 아니한 허망된 것임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스스로에게 얽매이게 했던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을 멀리 떠나 절대 안심을 얻게 되었느니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보살은 언제나 반야바라밀을 의지하는 까닭에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는 까닭에 공포심이 없고, 뒤바뀐 헛된 망상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마침내 열반을 성취하게 된다고 법문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참생명인 ‘나’ 즉 부처님생명만이 진실한 것이고 우리가 나라고 집착하고 있는 중생생명은 착각이고 참된 것이 아니며 인연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나에 대한 집착심이 허망분별에서 파생되어진 그릇된 인식[선입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그릇된 인식의 기반을 부처님께서는 오온(五蘊)이라고 설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교리적 설명을 피하고자 오온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피하면서 이해를 돕고자 간략히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온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다섯 가지의 온(蘊:선입견의 쌓임)으로 대상과 세상에 대한 견해, 매 순간 느끼는 감정, 경험, 의지, 지식 등은 바로 오온으로 파악되어진 나와 세상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온은 바로 관념이며, 편견이며, 선입견으로 똘똘 뭉쳐져서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는 우리들의 신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오온의 마음을 나[我]라고 여기며 일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온으로 파악되어진 다시 말해서 분별심으로 이해되어진 나와 세상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고 뜻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대유한의 삶이 전개되어지게 된다고 일깨워 주고 계신 것입니다.
불교의 법문과 수행은 바로 이 같은 오온을 바르게 인식케 하고 그릇된 관념과 선입견을 벗어나게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법회에서는 올바른 믿음을 일으키게 하고 본래 참생명의 자리에 나아가게 하기 위해 염불(念佛)을 수행하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염불은 오직 참생명인 부처님생명 만이 실재함을 받아들이는 마음챙김 수행입니다. 지금 이 순간 진실생명인 부처님생명만을 받아들이는 수행이 바로 염불이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는 현상은 지금 이 자리에 온통 비의 기운이 충만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참생명에 대한 법문을 듣고 작은 믿음 일으키고 염불을 모시는 연유는 온 천지에 충만 되어 있는 부처님의 자비원력 즉 반야바라밀이 우리에게 작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지금 처해 있는 현실적 사실에 집착하여 마음 혼란스러워 하기 보다는 인내심을 지니시고 온전히 부처님의 법문에 귀를 기우려 염불 수행을 지성스럽게 하다보면 부처님의 법문이 우리들의 관념으로 이해하는 마음 단계에서 진일보하여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정견(正見)이 생기게 됩니다. 그때야 비로소 중생생명이 무아(無我)임을 바르게 믿어지게 됩니다. 관념으로 대하던 세상에서 비로소 점점 벗어나 참생명의 삶은 본래로 살아왔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염불 정진만이 진실한 것임을 분명히 믿고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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