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담을 나누면서, “염불(念佛)이 들리십니까?”하고 물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많은 법우들이 제각각의 다양한 답을 합니다. 어떤 분들은 들렸다 안 들렸다 한다고 하고, 전혀 염불이 되지 않는다고 하기도 하고 또는 황홀하게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염불을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염불은 다만 듣는 것입니다.
무엇을 듣는다는 것인가?
부처님의 부르심을 듣는 것입니다.
어떤 부르심일까?
나의 참생명인 부처님생명에게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하시는 부르심입니다.
이와 같이 염불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부르심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부르심에 비춰진 나의 참생명인 부처님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염불은 생명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울 앞에 서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비춰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얼굴에 “검댕이가 묻었구나.”하면 세수할 수 있고, “엄청난 재산이 있구나.”하면 내어 쓸 수 있고, “지금 젊음이 있구나.”하면 젊게 살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네”하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더 나은 얼굴이나 더 많은 재산이나 또 다른 젊음이나 특별한 사랑을 구하기만 하니, 마냥 괴롭기 밖에 더하겠습니까? 이렇게 자가당착적으로 살면서 괴롭지 않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지경입니다.
사실 괴롭다는 것은 보편적이지가 않습니다. 저마다 자기모순을 자각하는 데 따른 필연적인 현상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닙니다. 결국 자기모순을 자각한다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의 자비(慈悲)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못난 중생살이를 자신의 모든 것으로 아는 착각이 여지없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은 “그렇게 자비로우신 부처님이 왜 저한테 이런 환란과 어려움을 주십니까?”하면서 투정을 하곤 합니다.
물어봅시다. 부처님의 자비가 무엇입니까?
꿈을 꾸는 사람에게 더 좋은 꿈을 꾸라고 이르는 것일까요?
마약에 중독된 사람에게 더 좋은 마약을 공급해 주는 것일까요?
아니라면 수술에서 깨어난 사람이 아프다고 하니까 계속 진통제를 주사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지요. 꿈은 깨어야 하고, 마약은 끊어야 하며, 진통제는 그만 삼가야 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자비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나의 어둡고 비뚤어진 모순을 비춰서 삶의 실상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비란 그런 겁니다.
왜 그러할까?
대신(代身)이라는 수식어가 아무 소용이 없기에 그렇습니다.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습니까? 대신 밥 먹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신 일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대신 병을 앓아줄 사람도 없습니다. 마침내는 대신 죽어줄 사람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대신하는 삶이 있을 수나 있겠습니까? 사람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곳을 대신할만한 시간과 장소 또한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안심(安心)입니다.
내가 사는 줄 알았습니다. 모순 덩어리인 나의 힘만으로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를 향해서 염불(念佛)하고 계신 부처님입니다. 자비로우신 부처님이 다 무한생명에 가득한 무한광명을 비춰주고 계십니다. 부처님이 불러주시는 염불에 나 또한 염불합니다.
이제 염불하는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입니다.
모순에 덮였던 허위의 껍질이 벗겨지니, 나는 처음부터 밝음의 주인공임이 밝혀집니다. 아무리 오래된 어둠일지라도 빛 한 줄기가 비침과 동시에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밝은 소식으로 가득 찬 삶에 어찌 괴로움을 부여잡고 씨름할 시간이 따로 있겠습니까?
오직 염불로 태어난 부처님생명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렇기에 이 순간에도 우리는 태어나고 있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어느 아이가 태어나는 것만이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달력상의 날짜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오늘이라는 날짜마다를 맞이하는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영원(永遠)은 추구의 목표가 아닙니다. 순간마다 영원이 태어납니다. 그야말로 날마다 누려야 할 오늘의 현실입니다. 진정한 현실은 결코 오늘을 떠나지 않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는 조건의 충족은 환상이지, 현실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아니었던 사람이 엄마로 태어납니다. 어저께까지 아빠가 아니었던 사람이 아빠로 태어나고, 할아버지가 아니었던 사람이 할아버지로 태어나며, 할머니가 태어나고, 이모가 태어나고, 고모가 태어납니다. 이 정도가 아닙니다. 종횡(縱橫)으로 맺어진 인연의 끈을 따라서 수많은 생명이 동시(同時)에 태어납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만이 아닙니다. 오늘마다 태어나는 나와 함께, 온 세상의 생명들이 오늘도 태어납니다. 그야말로 제망찰해(帝網刹海)이고 매트릭스(matrix)입니다. 생명은 이렇게 신비합니다. 언제? 오늘입니다. 날마다 오늘 말입니다.
그러니 나를 떠나거나 대립한 세상이나 사람 또는 사건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진실로부터 밝은 말을 하고, 밝은 웃음을 주며, 밝은 행동을 할 때, 오늘마다 나와 더불어 태어나는 모든 생명들 또한 그 밝은 생명의 파장에 맞춰 춤을 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라는 사람이 염불을 하는 게 아닙니다. 모순의 그림자에 잔뜩 덮여있으면서도, 그마저 알아채지 못하는 나는 염불마저 내 힘으로 하지 못합니다. 부처님이 불러주시는 염불 속에서 비로소 내가 참된 생명가치에 값하며 염불하는 것입니다. 결국 ‘나’라고 하는 사람은 염불로 살려지며 이 순간에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염불하는 오늘, 이제 바야흐로 영원한 삶이 시작됩니다. 찬탄의 나팔을 불어 위대한 부처님생명의 탄생을 알리고, 감사의 북을 울리며 무한생명의 성취를 갈무리합니다. 그러니 뭘 따로 걱정하겠습니까? 염불인(念佛人)에게는 새삼스레 만족을 추구할 목표가 없습니다. 안달복달하며 쟁취하려고 하거나 쫓기면서 노심초사할 새가 없습니다. 이미 완전한 생명으로 태어난 그대로 살아갈 따름입니다.
오늘 속에서 영원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나 혼자만으로 그치는 게 아닙니다. 과거에 인연 지었거나 앞으로 인연 지을 사람과 사건들을 향해서 찬탄합니다.
날마다 “오늘이 바로 행복의 시작임을 알았으니, 염불로 살려지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갑시다.”하는 법우를 찬탄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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