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실로 모험의 연속임과 동시에 무한한 성취의 달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늘에 빛나는 태양은 언제나 빛과 열(熱)을 베풂에 아낌이 없습니다. 비옥한 땅은 갖가지의 야채를 키워 주고 있습니다. 온 산을 뒤덮은 짙푸른 나무숲은 맑은 공기를 내뿜습니다. 굽이굽이 계곡 따라 흐르는 물은 끝없는 욕망에 찌든 마음까지 씻어줍니다. 얼룩소는 별 시늉도 없이 두 눈을 껌벅이는가 하면 벌써 우유를 내주고 있습니다. 모이 쪼기에 바쁜 닭은 어느새 탐스런 달걀을 낳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하염없는 공급 속에 살려지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한시라도 이 공급이 끊긴다면 우리의 삶은 영위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훌륭한 조건을 갖고 있어도, 우리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물론 세상살이의 길목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완전한 세상, 위험이 전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대개 이런 측면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삶의 가능성을 부정적(否定的)으로 정의하곤 합니다. 말세(末世)가 되었다거나, 점점 비인간화(非人間化)되고 있다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견해가 난무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들은 오늘날에만 새삼스런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과거에 발생했던 숱한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삶을 일궈낸 위대한 생명력 곧 업력(業力)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두운 측면만을 굳이 강조한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이 끝없이 위축될 것은 자명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아쉽게도 이런 말을 흔히들 하시더군요.
“누군가 말하기를, 나의 업장(業障)이 두터워서 일이 자꾸 꼬인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부터는 삶에 대한 의욕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아무리 나에게 업의 무한한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은가?”
오 헨리라는 작가가 쓴, ‘마지막 잎새’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죽음을 기정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던 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이미 삶을 향한 더 이상의 희망을 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아니 바라고 있지 않았다는 표현이 걸맞는 환자였습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할 일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이 환자는, 병원 마당에 있는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광경을 주목하게 됩니다. 늦가을의 싸늘한 바람이 나무에 달렸던 나뭇잎들을 하나 둘 떼어가는 것을 보며, 얼핏 자신의 처지와 나무를 동일시하게 됩니다.
이렇게 날마다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데, 나무는 점점 앙상해져 가는 게 아닙니까? 끝내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달랑 하나만 남고 맙니다. 자신의 목숨도 이제 저 잎이 떨어질 내일이면 마감될 것이라는, 두렵지만 확실한 다짐을 하며 잠자리에 드는 환자입니다.
그런데 옆방에는 마침 늙은 화가(畵家)가 입원해 있었습니다.
이 사람 또한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예감하고 있다는 옆 방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됩니다. 드디어 자신이 생애의 마지막 보람을 남기기 위해 침대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추운 날씨를 아랑곳 하지 않고 옆 창문에 매달려, 혼신의 힘을 다해 유리창에 나뭇잎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다음날 아침. 밤새 심한 바람이 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마지막 잎새는 여전히 나무에 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죽기를 작정하던 환자는 놀라운 생명의 기적에 탄성을 내지르게 됩니다. 나뭇잎의 질긴 생명력에 감동하며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을 갖게 된 것이지요. 바로 그 순간 옆방에서는 늙은 화가의 시체가 치워지고 있었지만...
업장(業障)이 무엇인지를 잘 시사하는 내용입니다.
업장이란 스스로에 대해 더 이상의 물음을 갖지 않을 때 발생하는 왜곡된 삶을 가리킵니다. 마치 물이 고여 있으면 썩는 원리와 같다고나 할까요?
말 그대로 業의 창조력이 발휘되는 과정상에 일어난 장애가 곧 업장입니다. 때문에 업장을 고정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자신에 대한 모독입니다. 아무리 처지가 비참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변하지 않는 실체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정하기 싫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환경에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즉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관념이 구체화되면, 우리 삶의 환경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우리는 기분 좋은 일을 맞이하면 어지간한 경우를 당해도 참으로 관대합니다. 세상이 다 나를 축복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화가 치밀 때는 아무나 붙잡고 시비하기가 십상입니다. 나를 향한 비웃음만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어차피 우리의 현실이란 게 고정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취향과는 관계없이 벌어지는 일들로 가득차 있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묘한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기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변화를 굳이 외면하려고 하는 버릇 말입니다. 나름대로 좋다고 여기는 사항만이 아닙니다. 진절머리 나게 싫어하는 것마저 움켜쥐고서는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를 불안해하면서도 말이지요.
우리는 이와 같이 바깥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 데, 스스로 진실이기를 바라는 사건이나 사물만을 선택합니다. 마치 한정된 테두리를 긋고 그 속에 들어가 앉아서는, 바깥에 대해서 관계하지 않겠다는 태도라고나 할까요?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무력감(無力感)이 그 원인입니다. 자신의 참된 능력을 스스로 믿지 않기에 그렇게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만약 업장이 두텁다고 생각된다면, 아직까지 발휘되지 않은 자신의 참된 능력이 시험받고 있는 증거라고 여기면 됩니다.
장애는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겐 얼마든지 꺼내어 쓸 수 있는 생명의 에너지가 비축되어 있습니다. 행여 지레 겁을 먹고 주저앉고 만다면, 그야말로 어이없는 일이지요.
결혼식을 올리는 날, 비가 온다면, 아마 두 가지의 상반되는 반응이 있겠지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경사스런 날에 비가 내리다니 어째 불길(不吉)하다. 날을 잘못 잡았는가 보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반면에 이런 사람도 있겠지요.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하는데, 얼마나 좋은 징조인가? 이제 하는 일마다 흔들림 없이 이뤄 질 것이다.”
예부터 ‘꿈보다는 해몽’이라는 말이 있어 왔습니다. 물론 누구나 알고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에 담긴 진정한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합니다. 더구나 실제의 삶에 그 뜻을 대입하며 사는 사람은 더욱 적은 것 같습니다.
이는 결코 자기합리화의 도구가 아닙니다.
행복도 불행도 우리 마음이 불러오는 것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원(願)하는 바가 있다면, 우리는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진정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하고 솔직하게 말입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작년 여름에 구도여행 다녀온 백두산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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