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본래부터 자유자재(自由自在)이며 절대무한(絶對無限)인 생명을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괴롭게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래 생명에 대해 바르게 보지 못하고 ‘나’라는 한정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를 주장하는 한정된 생각과 고집을 항복해야만 참된 행복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나’라는 것은 본래 없습니다.
본래 있는 것은 ‘나’와 ‘남’이라는 구분이 없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부처님생명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본래 부처님생명 밖에 없다’는 법문을 들으면, 우리 법우님들은 이제 논리적으로는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이지, 우리 삶의 태도로 반영되어 나타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행동은 논리적인 이해력보다 잠재의식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잠재의식 자체를 바꿔놓지 않으면, 아는 것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잠재의식의 내용을 바꿔서 부처님의 법문이 내 삶에서 효력을 발생하도록 하려면 부지런히, 끊임없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염불하고, 경전 독송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법문을 듣는 가운데 잠재의식의 내용이 변화됩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는 우리가 이렇게 부지런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네 가지 공덕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마음에 걸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음에 걸림이 있다는 것은 남이 거역한다거나, 환경이 허락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서 ‘나’를 모두 항복해버린 사람에게는 ‘내’가 없기 때문에 ‘남’도 없습니다. 그러니 거역할 남도 없지요. 허락지 않는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자(佛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제일 먼저 얻는 소득이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출세하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에 걸림이 없는 자유입니다. 그러니 사주팔자에 걸릴 것도 없고, 궁합에 걸리는 것도 없고, 이사방향을 볼 것도 없고, 이름이나 관상에 걸릴 것도 없습니다.
물이 흐르는 것을 가만히 봅시다.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다만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를 뿐입니다.
물이 흘러가는 길이 똑바로 생기면 똑바로 흘러갑니다. 그러다가 바위를 만난다든지 삐뚤빼뚤한 길을 만나면, 또 그 환경에 순응해서 구불구불 흘러갑니다. 어떤 장애가 나타나더라도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그 환경에 순응해서 흘러가기 때문에 역설로 장애를 받지 않고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우리들의 일상생활도 어느 누구와도 대립하지 않고, 어느 누구와도 투쟁하지 않고 순응해서 살아가면 그만입니다. 투쟁하지 않을 때, 불안이나 공포에 휩싸이지 않고 절대 자유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에 관계없습니다. 일체의 외부적인 조건이나 또한 어떤 정신작용도 나를 구속하지 못합니다.
둘째, 공포심이 없어지게 됩니다.
공포심의 근원에는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을 들어서, 이 몸뚱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몸뚱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참생명이 죽는 것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가 자동차 엔진에 고장이 나서 자동차를 폐차장에 버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면 자동차 운전수도 폐차장에서 운명이 끝나게 되나요? 자동차가 없어져 버리더라도 운전자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실로 이 몸뚱이를 내 인생의 도구라고 생각하고, 그 몸뚱이를 부리는 주체로 살면, 이 몸뚱이에 병이 생기거나 말거나, 몸뚱이에 어려움이 있거나 말거나 공포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공포심이 생기는 것은 자꾸 ‘나’를 고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셋째, 거꾸로 보던 것을 멀리 떠나고 바로 보게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자동차의 비유처럼 이 몸뚱이라고 하는 것은 내 생명의 도구일 뿐인데, 우리는 이 몸뚱이를 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를 잘 먹여야겠다고 하고, 잘 치장하려고 하고, 남으로부터 대접받으려고 하고, 편하게 살려고 하면서, 이 몸뚱이가 죽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거꾸로 보는 것입니다. 거꾸로 본다는 것은 참으로 있지 않은 것을 있다고 하고, 참으로 있는 것을 없다고 보는 것을 말합니다. 참으로 있는 것은 부처님생명인데 부처님생명은 없다고 하고, 중생생명인 이 몸뚱이는 참으로는 없는 것인데, 이것을 참으로 있는 것으로 봅니다.
이 세상 모든 현상은 내가 불러 오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 쓰는 대로 내 앞에 전개되는 것입니다. 필름에 찍힌 대로 영화가 상영되는 것처럼, 내 마음에 찍은 대로 내 앞에 전개되는 세계가 바로 우리들이 맞이하는 현상세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남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하면서 남을 탓합니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고 남들과 싸우면서 지내는 것이 중생들의 인생입니다. 거꾸로 보고 있기 때문에 중생의 삶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처님의 법문을 들어서 거꾸로 보는 것을 멀리 떠나서 바로 보게 되는 것이며, 거꾸로 보던 것을 멀리 떠난다는 것은 몸뚱이가 나라는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넷째, 완전한 열반(涅槃)에 들게 됩니다.
완전한 열반에 든다는 말은 새삼스럽게 열반에 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래 있던 완벽한 열반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극락왕생(極樂往生)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극락세계라고 하는 특별한 세계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본래 극락세계에 살고 있음을 알아채고 극락의 주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극락세계는 무한생명(無限生命)인 아미타생명[無量光 無量壽]이 살고 있는 세계인데도 불구하고 유한생명(有限生命)인 ‘내’가 살고 있다고 우기면서 살고 있었으니 여러 가지 괴로운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나를 내세우고 우기면 우길수록 점점 더 상대세계에 떨어지게 되고, 스스로를 한정하게 되므로 그만큼 더 괴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니,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는 까닭에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니까 이 세상을 거꾸로 봤던 것에서 벗어나 본래 완벽한 열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야심경에서 일러주고 계신 나무아미타불의 공덕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서 새삼스럽게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는 완벽한 열반의 세계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부터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려지고 있는 가운데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온 우주의 무한생명이 나를 살려주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내 생명 자체가 본래부터 온 우주의 무한생명 그 자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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