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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의 법칙

문사수 2012.12.11 조회 수 24273 추천 수 0

  저는 지금 TV수상기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멋진 연기를 하는 탤런트가 등장한 것입니다. 한참을 그렇게 넋 놓고 바라보다 부질없는 생각이겠거니 하면서도 그 탤런트의 옆자리에 앉아봅니다. 하지만 막상 앉은 자리 옆에는 수상기만이 있을 뿐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탤런트는 수상기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바라는 어떤 것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유사성을 느끼게 됩니다. 무척이나 갖고 싶다고, 하고 싶다고 안달복달 하면서도 그것을 눈앞에 두고 바라만 보고 있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 대상일 뿐, 삶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의 최고 덕목이라고 너도나도 찬양해 마지하지 않는 보시(布施)만 해도 그렇습니다. 바쁘게 살다가 여유가 생기면 베풀겠다는 생각을 쉽게 포기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물질적인 잣대에 의해서 자신의 모자람을 확정하고, 그것을 채울 때까지 구체적인 행위로 이어지기가 가뭄에 콩나기 마냥 드뭅니다.
 이와 같이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결코 베풂의 미학을 연출하지 못합니다. 마냥 가난하게 살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말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 마주하게 됩니다.
 “지금은 형편이 나쁘니까, 나중에 한 턱 낼께.”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한 턱의 사건이 그 사람을 통해서 일어나게 될까요?
 물론 한 마디로 잘라 말할 것은 아니지만, 제 생각으로는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우선 살아있다고 하는 생명의 증거가 지금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데도, 나중이라는 극히 모호한 말을 쓰고 있는 것이 첫째 이유입니다. 다음은 자신의 부족함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그것은 충족되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확정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인과법(因果法)에 따라서 앞으로도 여전히 부족하게 살 것이란 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우리의 삶은 공허한 생색이나 내면서 시간을 때울 정도로 한가하지가 않습니다. 살아있음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절실히 느끼지 않는 한 우리의 생명감각은 무디어 집니다. 비록 계산상으로는, 다시 말해서 물질적인 기준으로는 상대적인 부족이 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모든 생명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보시의 기회를 박탈할 만큼 영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을 대접한다고 할 때, 물질로서의 진수성찬을 베푼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보시가 아닙니다. 한편에서는 감사와 찬탄의 마음을 음식에 담아서 베풀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마음에 기꺼이 답하며 먹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시의 순간, 이미 그에 합당한 보시를 넉넉히 받기 마련입니다.
 굳이 억지로 바라서가 아닙니다. 아무리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물질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 집착을 베푸는 만큼 버리고 있기에, 그에 상응한 감사와 찬탄으로 채워질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법회다 상담이다 하면서 바삐 다니다 보니, 원고를 약속한 시간 안에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마감 시간은 엄연하기에 편집장의 독촉은 화살보다 빠르게 날라듭니다.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잠시, 컴퓨터 스위치를 켜고 자판 위에 손가락이 놓이는 순간부터 생각은 봇물 터지듯 쏟아집니다. 가물가물하던 주제가 확실해지다가는 온갖 말들이 줄줄이 엮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없는 것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 담아두었던 생각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느린 손가락을 한탄할 정도의 속도로 글을 재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코 없던 것이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일 뿐입니다. 비록 내키지 않는 것이 있을 지라도 지레 겁을 먹고서 포기해 버리는 것은 생명의 가치를 위축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싫어하는 대상과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더 나아가 그 대상과 접촉할 때 잠재되어 있던 본래의 자기가 드러나게 됩니다. 나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가치가 세상에 그 얼굴을 내미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사람이나 물건 혹은 행위를 싫어했다는 감정의 과거완료형(過去完了形)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싫어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보시입니다. 선택사항으로서가 아닙니다. 베풂의 가장 구체적인 증거가 나 자신이기에, 나에게 담긴 베풂의 에너지를 또한 베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따라오는 것을 일러 흔히들 복(福)이라고 하는 것 아니던가요?
 따라서 복을 받지 못해 안절부절 하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복을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삶의 모든 영역, 즉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원래부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시간과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의 생명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원한에 가득 찬 사람이 사는 집은 언제라도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기에, 흉가(凶家)를 예고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반면에 경제적으로는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라 해도 가족 간에 참된 존경과 사랑이 있다면, 이 집은 스위트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외적인 것도 우리의 생명을 위축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내가 살고 있다는 생명감각만이 삶의 증거입니다.
 따라서 여분의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의 참생명 가치는 구속되는 데서는 발휘되지 않습니다. 무한한 가능성 그 자체이기에,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활동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글을 못 읽는 사람을 일러 문맹(文盲)이라고 하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문맹의 참된 의미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깨친 사람이 평소에 글을 읽지 않는다면, 이는 문맹인 사람이 글을 못 읽어서 뜻을 풀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습니다.
 글이란 그것을 통해 어떤 정보를 알고자 하는 하나의 기호로서 필요한 것이지, 생긴 모양새를 머릿속에 담아주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한번 글을 깨친 사람일지라도 계속 글을 대해야 글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살림살이를 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베풂을 받아 사는 모습이 살림이라면, 그 살림의 내용을 내어서 만나는 인연을 살리는 것이 삶입니다. 겉으로야 주고받는다는 방향성이 있는 것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의 살림살이는 베풂이 일어나는 가장 구체적인 현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족 구성원끼리는 물론이고 이웃과의 살림살이가 원만하지 못하다면 번영의 길, 향상의 가능성은 우리와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자, 아무리 퍼 써도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인 살림살이, 이제부터 누가 어떻게 가꿔가야 하겠습니까?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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