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聞)
나 자신을 비추어보아(思)
나의 삶을 수정함으로써(修) 정토에 이른다
나는 오늘도 법을 청합니다.
오로지 설법하는 온갖 선지식만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기뻐합니다.
오로지 짓는 공덕에는 너와 내가 없기에…
인천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남기표 씨는 어느 때부터인가 자신이 크게 변했음을 느낀다. 예전에는 손님이 오면 약값을 깎지나 않을까 혹은 잠깐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는 사이 큰 고객이라도 다녀가지 않을까 등등 매사에 노심초사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염불수행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약국을 찾는 손님이 빨리 쾌차하기를 기원하며, 담배냄새나 입냄새를 제거할 수 있는 치약을 만들어 무상으로 보시하기도 했다. 현재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지만 그는 “약국을 찾았던 사람들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나에게 보시할 기회를 주러 온 감사한 부처님들이었다”고 강조한다. 서울 강남의 벤처기업에서 근무하는 정희석(45) 씨도 수행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훨씬 넘었다. 새벽마다 예불과 함께 염불독송하는 일도 자연스런 생활의 한 부분이 됐다. 이렇게 염불정진을 시작한 후 삶이 비록 고통의 바다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유유자적 헤엄치고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88년 ‘주인되는 불교’ 위해 결성
남기표·정희석 씨를 비롯해 문사수(聞思修)법회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이 조금씩 변화돼 가고 있음을 안다. 부처님 말씀은 단순히 ‘좋은 말씀’의 차원을 넘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경전공부와 생활 속 수행정진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聞), 나 자신을 비추어보아(思), 나의 삶을 수정함으로써(修) 정토에 이르는 길’이란 뜻의 문사수법회. 이 법회가 시작된 것은 지난 88년으로 부처님 말씀을 근간으로 자신이 주인되는 불교를 원했던 몇몇 사람들에 의해 시작됐다. 함께 모여 경전을 공부를 시작한 이들은 90년대 초에는 현 문사수 회주인 한탑 스님을 중심으로 경기도 고양시 원당에서 법회도 열기 시작했다. 그 때만하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불씨가 되어 수천 명이 참여하는 신행공동체로 확산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대중법회를 열면서 입소문이 퍼져 하나 둘 문사수를 찾기 시작했고, 현재 담양 정토사(정진원)을 비롯해 고양, 대구, 대전, 계룡, 이천 등에서 문사수라는 이름으로 법회가 열리고 있다. 특히 2000년 11월에는 문사수 법우들이 함께 수행할 수 있는 도량을 짓고 봉불점안법회를 갖기도 했다. 회원인 김개천(이도건축소장) 건축가의 뛰어난 안목 때문인지 “전통이라는 고정관념에 구속되지 않고 위용을 뽐내거나 권위를 과시하지도 않으면서 사찰 본연의 역할을 살린 창조적인 건축물”이란 평가를 받았으며, 지난해 2월에는 현대 불교건축물 중 최초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1500여 명에 이르는 문사수는 가정주부와 직장인에서부터 교수, 프로그래머, 벤처사업가, 예술가, 문학가, 과학자, 학원 강사 등 각계각층의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문사수법회가 이렇게 뿌리내리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도심지 한 복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옆 사무실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목탁 대신 작은 종으로 법회 시작과 끝을 알려야 했으며, 특히 ‘사(寺)’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사이비 취급받기 일쑤였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교계내에서조차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했다. 그럴수록 회원들은 문사수의 창립취지를 살려 모순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의 근본에 두고 살아가고자 노력했다.
거사·보살 대신 ‘법우’로 호칭
회원들은 초심자와 일반인들을 위한 공개강좌를 열었고, 경전강독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 했으며, 온가족이 참여하는 대중법회도 열었다. 특히 여름과 겨울에 맞춰 몸과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정기수련회도 열고, 문사수를 알릴 수 있는 회보 좥법우좦 발간 및 홈페이지(www.munsasu. org)도 개설했다. 이를 통해 회원들은 각자의 삶으로서 불교를 실천하고 문사수법회를 알려나갔던 것이다.
문사수법회의 특징은 법회에 차별이 없다는 점이다. 누구나 법을 배우는 사람인 동시에 지도하는 법사이기도 하다. 또 청소에서 설거지 등 일반사찰에서야 여성의 몫이지만 여기에서는 남녀가 따로 있지 않으며, ‘거사’나 ‘보살’이라는 일반화된 명칭 대신 모두 ‘법우’로 통일해 호칭하고 있다. 나아가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자녀나 이웃들까지도 부처님처럼 섬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고 믿고 실천하는 문사수법회. 어쩌면 그들은 이 시대 새로운 형태의 결사운동을 이끌어나가는 선구자들인지도 모른다.
“형식적 틀 넘어선 생명공동체 지향”문사수법회 여여 김태영 상임법사
“한 때 불교계에 실망을 많이 했었습니다. 잘못된 믿음이 바른 믿음으로 둔갑하고, 사법(邪法)이 정법(正法)으로 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그것은 남의 탓이 아니라 모든 문제가 나에게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세상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요.”
문사수법회 여여 김태영 상임법사. 창립 때부터 이곳에서 법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불교란 학문적 호기심의 대상이나 사상·관념체계가 아니라 자신의 궁극적인 삶의 원리”라고 말한다.
현재 고양시 행신동 문사수법회에서 대중법회와 경전법회 등을 지도하고 있는 여여 법사는 현실을 등지게 하는 신비주의적 불교, 대리체험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수행에 대한 허위의식, 효용가치를 앞세운 상업주의적 포교에 맞서 수행의 주체가 자신임을 깨닫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문사수법회의 법우들을 돕고 있다.
“불교는 한정된 자기가 아닌 본래의 자기를 찾아서 대자유의 길을 가자는 생명운동입니다. 여기에 남녀노소는 물론 승속의 차별조차 있을 수 없지요.”
그가 진행하는 법회의식은 대부분 한글로 진행된다. 부처님이 그 시대의 언어로 설법했듯 오늘날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한글로 재해석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도(道)를 밝히는 사람은 많아도 도를 행하는 사람은 적고,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진리와 통하는 사람은 적다’는 달마대사의 말이 오늘날도 마찬가지”라며 안타까워하는 그는 문사수법회가 형식적인 틀을 넘어 새로운 생명공동체, 수행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글·사진 이재형 기자
<2002-01-30/642호>
입력일 : 200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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