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괴로움을 대신 받는 공양
이렇게 중생을 섭수하는데, 그 다음에 네 번째 나오는 법공양이 ‘중생의 괴로움을 대신 받는 공양’입니다.
우리는 중생을 이롭게 한다고 쉽게 얘기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중생까지 이롭게 할 수 있을까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나를 미워하고 헐뜯는 사람들까지도 내가 섭수해서 그 사람을 좋은 세상에 나도록 축원해주는 것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과응보(因果應報)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과응보라는 것은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것 때문에 고생해야 되는 사람은 당연히 그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라야 합니다.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자기가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간혹 남이 잘못한 것을 가지고 내가 대신 괴로워해야 될 경우가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 억울합니다. ‘저놈이 잘못했는데 내가 왜 고생을 하느냐. 저놈 탓이다’라고 하면서 자꾸 남을 탓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그러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불법(佛法)을 배웠기 때문에 괴로움을 참을 만한 힘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와 저 사람이 실제 생명내용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고 배웠습니다. 우리 모두는 본래 한생명을 살고 있는 것이니까, 저 사람의 잘못으로 내가 대신 괴로워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생명의 공양이 되는 것입니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뺏겼다고 합시다. 그럴 때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 내가 앉아가면 저 사람 다리가 아플 뻔 했는데, 내가 대신 서서 가기 때문에 내 다리가 아픈 거니까 이 자리에서 바로 법공양을 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채면 됩니다. 이것이 중생을 대신해서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와 남’ 사이에 울타리가 없어진 증거가 됩니다. 울타리가 없어진다는 것, 이것이 바로 무한세계의 실현입니다.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는 공양에서 무한 세계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선근을 부지런히 닦는 공양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한다’는 것은 착한 일이라고 이름 붙은 것은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받들어 행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그 다음에 나오는 ‘선근을 부지런히 닦는 공양’이 나옵니다.
착한 일을 하지 않고 복을 받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복을 짓는다는 것은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만큼 했으면 되니까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나올 수 없습니다. 세상의 착한 일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자꾸 자꾸 해야 합니다. ‘남은 하지 않는데 나는 이렇게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 하고 또 해도 끝이 없을 만큼 영원히 하는 것이 ‘선근을 부지런히 닦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할 것도 없고, 또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많이 했다’고 하면서 거기에 주저앉을 것도 없습니다. 남들이 하거나 하지 않거나 관계없이 영원히 그렇게 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남한테 칭찬을 받거나, 인정을 받거나, 그래서 마침내 ‘착한 일을 했으니까 나에게 복이 돌아온다’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부처되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보살업을 버리지 않는 공양
나에게 돌아오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끊임없이 선근을 닦는 것이 바로 보살업(菩薩業)입니다. 그래서 법공양의 여섯 번째는 ‘보살업을 버리지 않는 공양’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걸 하지 않는다든지, 일의 크고 작음을 따져서 한다든지 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 커서 내 목숨을 바치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든지 혹은 ‘바늘귀 꿰어주는 정도는 너무 하찮은 일이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나한테도 이롭고 남한테도 이로운 것[自利利他]’이면 따지지 않고 부지런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업을 버리지 않는 공양입니다.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
그 다음 일곱 번째는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입니다.
보리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아누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또, 아누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나와 남이 다 함께 부처되어 지이다[自他一切成佛道]’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등급 더 올라가면 ‘나는 비록 부처가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남을 먼저 부처가 되도록 하겠다[自未得道成佛他]’는 마음을 냅니다. 이러한 수행을 하신 대표적인 분이 지장보살(地藏菩薩)입니다. 지장보살은 한량없는 세월에 수행을 많이 해서 부처가 되실 수 있는 공덕을 충분히 갖추신 분입니다. 그런데 부처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이 남김없이 부처가 되면, 그때 비로소 부처가 되겠다’는 원(願)을 세우신 분입니다.
앞에서 착한 일이면 무조건 한다고 했습니다만, 그 마음이 아누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떠나서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의 일상생활은 이 보리심을 떠나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보리심(菩堤心)을 떠나지 않는 공양입니다.
이제까지 보현행원품에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신 일곱 가지의 법공양의 의미를 하나하나 공부해 보았습니다. 법공양의 근본은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한다고 하는 것의 본바탕에는 반드시 보리심이 있어야 합니다. 보리심에 바탕을 두고 끊임없이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공양을 올리는 것, 이것이 바로 법공양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일곱 가지 법문을 꼭 받아 지니고 법공양 올리도록 해야겠습니다.
_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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