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듣기
 

법문듣는 마음자세

문사수 2016.01.11 조회 수 11540 추천 수 0

  옛날에 어떤 한의사가 있었는데, 제자에게 한 10년쯤 공부시킨 후, 산을 돌아다니면서 약초로 쓸 수 없는 풀을 뽑아오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한 제자가 스승한테 와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더랍니다. ‘왜 그리 우느냐?’고 묻는 스승에게,
 “아무리 산을 헤매고 돌아다녀도 제가 공부가 부족한지 약초가 안되는 풀이 없어서, 부끄러워서 선생님한테 죄송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하더래요. 그 말에 스승이 오히려
 “너는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인가해주었다고 합니다.
  온 천지 모든 풀, 어떤 것 하나도 약초가 될 수 없는 풀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약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벌써 지혜가 낮은 것인데, ‘산중을 다 뒤지고서 약초가 될 수 없는 풀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다면 벌써 그만한 경지까지 간 사람이야. 그러니 너는 남의 병을 고칠 수가 있다’고 인가 해주신 거죠.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 법사(法師) 아닌 사람이 있으면 한번 꼽아보세요. 우리 시어머니만은 도저히 법사가 될 수 없다, 우리 시누이만은 법사가 될 수 없다, 우리 회사 과장만은 법사가 아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불교에 입문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정말 공부를 한 입장에서 보면 온 천지가 온통 법사뿐입니다. 나를 일깨워주고, 나로 하여금 밝은 세상으로 살게 하고, 나로 하여금 참진리를 깨우쳐주니 그들이 다 법사입니다.


  그런데 법문이 설해지는 자리에 와서 앉아있으면서도, 법문을 듣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자세로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법문이 끝나면
 “오늘 그 법문은 그 전에 아무개 법사도 말씀하시고, 누구도 말씀하신 정말 좋은 법문입니다”
라고 와서 인사합니다. 하지만 진짜 좋은 법문이라면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없지요.


또 어떤 사람은
 “한탑스님은 법문 내용은 좋은데 했던 이야기를 또 한다”
고 합니다. 들은 것을 또 듣는 것이 나쁜가요?
  법문 듣는 사람은 똑같은 소리 자꾸 들어도 좋다고 하는데, ‘한소리 자꾸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법문을 듣는 것이 아니라 웅변대회의 심사위원 노릇한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자세는 법문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법문이란 ‘들어서 내 마음속에 있는 어두움을 없애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없으면 탐진치(貪瞋癡)가 없어져 버리고, 내 마음의 지혜와 자비와 원력이 자꾸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내 마음의 지혜를 자꾸 밝혀가는 것이 법문을 듣는 것이지, '아, 저사람 하는 얘기, 그래 아무개 책에도 있던데…’ ‘아무개가 한 얘기 저 사람도 하는구나, 저 사람 기껏해야 그 책보고 와서 하는 소리야’ 하면서 듣는 사람은 백년 천년 만년을 절에 다녀도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법문을 듣는 마음을 구도심(求道心)이라고 합니다.
  법을 얻어서, 법을 받아가지고 내 마음을 밝게 해서 내가 행복한 인생을 살겠다는 열렬한 욕구가 없으면 법문을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옛날에 어떤 이름난 스님이 계셨습니다. 하도 이름이 나다보니 학자들이 법문 듣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스님께서 학자들 얼굴을 보니 벌써 짐작을 하시겠거든요. 그래서 앉으시라고 한 뒤
 “여기까지 먼길 오셨으니 법문보다도 차나 한잔 드시라”
고 권했습니다. 찻잔을 놓고서 차를 따르는데, 찻잔에 물이 가득 찼는데도 계속 물을 붓습니다.
 “아니 스님, 차가 가득 찼는데 자꾸 물을 부으시면 어떡합니까? 넘치지 않습니까?”
 “아, 그런가. 꽉 차 있으면 물이 넘치네.”
  여러분들도 지금 마음속에 법문이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이만큼 아는게 많다’는 생각이 가득 차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법문을 들을 수 없습니다.
  좋은 물을 받으려면 그릇을 깨끗이 비워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문을 들으려면 먼저 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나는 이만큼 많이 알고 있다든지, 나는 박사라든지, 나는 절에 다닌 지가 얼만데… 하는 등의 생각이 있는 한은 아무리 법문을 들어도 듣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경(經)에 나오는 것처럼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는 마음자세로 법문을 들으려면 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따라서 법문을 듣겠다는 마음을 일으킨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내 마음을 비운다는 얘기입니다.


  부처님께서 법문주시기 전에 반드시 네 글자를 말씀하십니다.
  여금제청(汝今諦聽),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들으란 얘기는 문법적으로 잘 판단을 해서 뭐가 틀렸는지 발견해내라는 뜻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들으라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학문적인 지식, 경험, 판단, 상식, 그것들을 다 내어버리고, 그런 것과 관계없이 나의 말을 진리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들어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 지식, 판단, 상식 그걸 다 내버리고, 그와 관계없이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모두 진리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법문 한마디라도 조금도 의심하거나 거부하는 마음 없이, ‘당신께서 주시는 모든 법문을 진리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과 공경으로 듣는 사람만이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습니다.


  흔히들 법회에 가자고 하면, ‘아유, 바빠서’라고 하면서 도리질하지요? 세상 사람들 전부가 다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어디로 뛰는 지도 모르고 바삐 뜁니다. 한참 뛰다보니 화장장(火葬場)에 가있는 경우를 발견하게 되지요.
  바빠서 법문 못 듣겠다는 것은 법문들을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법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몰라서지, 정말 바빠서 법문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바쁘다는 생각 말고 그저 법문 들어야 합니다.
  무량수경에서 ‘온천지가 불길에 휩싸였어도 법이 설해진다면 불을 뚫고서라도 가라’고 하십니다. 불을 뚫고 가다가 몸뚱이는 타죽을지 모르나, 그렇지만 거기 가서 한마디라도 들으면 내가 부처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마음으로 그 간절한 마음으로 법문 듣는 마음을 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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