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예불문 강의(10)
당신이 제일(第一)입니다
부처님의 법이 인도에서 발생해서 세계 도처로 퍼져나가는 역사적인 전개과정은 실로 드라마틱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시대와 지역의 문화를 훼손하지 않고 조화롭게 불법이 전해져 온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에 있어서, 여타의 다른 종교들처럼 정치 이데올로기의 옷을 입고 강압적으로 전파된 형식은, 불교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것은 ‘진리(眞理)’를 중심으로 하는 불교의 특질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교는 권력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어떠한 주종(主從) 관계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류사에 있어서 굉장히 오래된 올가미와 같은 이데올로기나 고정관념 등을 정면으로 타파해 온 것이 불교입니다. 예를 들어 무조건적으로 복속해야 할 조물주로서의 신(神)이라든지 운명론적인 계급주의 등입니다. 이런 면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은 인류사에 있어서 정신적인 대혁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 개개인이 그 어떤 무엇으로부터 구속당할 수 없는 절대 자유의 존재임을 천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사건이 역사적으로 전개되어 오면서 마침내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는 천 년 가까운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천 년은 긴 세월이 아닐 수 있지만, 인간의 종족과 문화와 문명들이 흥망성쇠(興亡盛衰)하는 과정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 있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하물며 불교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3천년의 세월을 짊어지고 전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일까요?
그것은 진리의 힘을 믿고 따른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진리 그 자체는 시간에 구속될 수 없습니다. 인류가 멸망하고 우주가 사라진다 해도 변함이 없어야 진리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깨치시기 전에도 진리는 엄연한 것입니다. 다행히 그 진리를 부처님이 깨치셨기에 우리는 ‘진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깨달음이 역사적으로 부처님 당시에만 유행처럼 반짝하다 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진리’를 깨쳐서 증명해 오셨던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진리’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분들을 일컬어서 깨친 이, 즉 성인(聖人)이라고 부릅니다.
정토예불문에서 여섯 번째로 지심귀명례할 대상이 바로 이 성인들인 것입니다.
지심귀명례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
至心歸命禮 靈山當時 受佛付囑 十大弟子 十六聖 五百聖 獨修聖
내지 천이백 제대아라한 무량자비성중
乃至 千二百 諸大阿羅漢 無量慈悲聖衆
영산(靈山)은 인도의 영취산(靈鷲山)의 줄임말입니다. 인도 구도여행 때 영취산에 실제로 갔었는데 그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산처럼 정겹고 험하지 않았어요. 산 정상에 독수리가 막 날아가려고 날개를 펴는 듯한 모습의 바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취산이란 불리웁니다. 부처님께서 말년에 영취산에 주로 계시면서 대승법문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전이 법화경과 무량수경 등의 대승경전입니다.
그 산에는 자그마한 천연 동굴들이 많이 있는데 거기에서 여러 제자들이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법회를 열고 법문을 듣고 수행한 도량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영산당시의 의미는 영취산에 계실 때만을 국한해서 이해하기 보다는, 부처님께서 출현하셔서 법회를 열어 법문 하실 때를 통칭한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법문을 왜 설하셨겠습니까? 그것은 깨치신 법을 전하여서 모든 존재들도 하여금 깨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역사적으로 열 분의 대표적인 제자가 계셨습니다. 사리불, 마하목건련, 수보리, 마하가섭, 아난, 가전연, 아나율, 라훌라, 부루나, 우파리 등이 바로 부처님의 십대제자로 불리어 모셔지고 있습니다. 이 분들 중에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바로 깨치신 분도 계시고 오랜 수행 끝에 깨치신 분도 계십니다.
아난존자 같은 분은 부처님을 항상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법문을 가장 많이 들은 제자이기에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일컬어집니다. 그런데도 가장 늦게 깨치셨다고 합니다. 한번 음미해볼 일입니다. 또 천안제일(天眼第一) 아나율존자는 법회 때마다 졸다가 부처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고서, 다시는 졸지 않으려고 눈꺼풀에 나뭇가지를 끼워 놓으면서까지 밤낮으로 수행하다 실명하였다고 합니다. 육안은 잃었지만 마침내 천안통을 얻으셨으니 그 정진력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신통제일 목건련존자는 부처님과 교단을 신통력으로 지켜온 호위대장 같은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업(業)을 신통력으로 피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으시고는 그 이후로는 신통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교도들이 자신을 시해하려고 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묵히 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스승의 말씀과 진리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이외의 십대제자들에 얽힌 인연담과 수행담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그 자체가 법문입니다.
이 모든 분들은 당시에 부처님의 깨치신 진리를 스스로도 증득(證得)하셨고 세상에 이 진리를 널리 알리셨습니다.
십대제자들은 수불부촉하신 분들입니다. 즉 부처님으로부터 부촉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부촉은 부탁하여 위촉한다는 뜻입니다. 부촉한다는 말씀은 일부분을 떼어서 그 만큼만 알아서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믿고 완전히 맡긴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십대제자들에게 무엇을 맡겼을까요? 그것은 부처님의 깨치신 법과 그 법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인 것입니다.
부처님으로부터 부촉을 받은 십대제자 분들은 각자 별명이 있습니다. 지혜제일 해공제일 설법제일 다문제일 신통제일 지계제일 등의 별명이 붙는데, 다 동일하게 제일(第一)이라는 찬탄의 칭호가 따릅니다. 요즘처럼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서 일등만 살아남는 비정한 현실을 연상해서는 안 됩니다.
제일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장을 십분 발휘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붙여지는 칭호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남과 비교됨으로써 자기 존재감을 확인합니다만, 결국은 상처를 입고 맙니다. 그러나 불법은 평등 속에서 차별을 말하니 제일 아닌 존재가 없습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제일의 능력을 발휘하여 부처님의 법을 받아서 지키고 전파하는 이들이 십대제자로 상징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에 있어서도 스스로 부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분이라면 자신의 ‘제일능력’을 총동원해서 ‘수불부촉’을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계속>
<문사수법회 정신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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