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佛法을 듣는 자세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에서 ‘내’는 부처님의 제자 중에 항상 부처님을 곁에서 시봉했던 아난존자입니다. 원래 부처님의 사촌동생이었던 아난존자는 기억력이 매우 좋아서 부처님의 법문을 모두 다 기억해 두었다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경전을 결집할 때 결정적인 공헌을 한 분입니다. 아난존자가 부처님 열반 직전에 부처님께 여쭸습니다.
“지금은 부처님께 법문을 직접 들을 수 있지만,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는 저희가 경전을 결집해서 후세에 전해야할 텐데 이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경전은 너희가 깨친 것도 아니고, 너희가 새로 만드는 것도 아니며, 단지 너희들이 나에게 들은 대로 적어가는 것이므로, 경전의 맨 앞에는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하거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전이든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순히 아난존자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려고 경전을 독송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가지고 있는 삶의 문제가 있습니다. 각자 지금 가지고 있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는 부처님가르침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하는 아난존자의 증언을 따라 읽어가며 부처님가르침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는 순간, 지금의 우리들이 그대로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할 때에 그 ‘내’는 초역사성을 가지게 되어 옛날 인도의 아난존자뿐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우리들도 이와 같이 듣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에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고막의 울림을 통해 청각적 자극을 감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엄마가 자녀를 꾸지람할 때
“너, 왜 엄마 말 안 듣니?”
라고 합니다. 엄마가 했던 말이 자녀의 귀에 들리지 않았을 리는 없을 테지만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엄마가 꾸지람하는 말의 의미는 귀로 잘 들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엄마가 말하는 것을 잘 받아들여 행동을 고쳐라’는 의미이지요.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에서 ‘듣는다’는 것도 이런 의미입니다. 단순히 고막이 울렸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받아들여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부처님의 가르침 그대로 살겠습니다’ 하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종(信從)’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믿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들었다’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얼핏 생각하여 ‘이와 같이’라고 하면, ‘부처님께서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나보다’고 생각하는 수준에 머무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라는 말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아견(我見)을 버리고 오직 부처님가르침만을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가르침을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처세술이나 상식과는 다른 가르침이 많이 나옵니다. 부처님가르침이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 경험, 학식 등에 반대되는 가르침이라 해도, 내 고집을 내세우지 않고 부처님께서 주신 가르침만을 진리로 인정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에서 ‘내’는 초역사성을 가진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이와 같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난존자가 2500년 전에 부처님께 들었던 바를 ‘이와 같이’라고 말하면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2500년 전의 아난존자의 증언을 듣자고 읽어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지금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전을 읽는다는 것이, 동시에 듣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간혹 보면, 아무런 뜻도 모르고 무조건 한문 경전을 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경전을 읽는 것이 좋고, 원문에 가까운 한문으로 된 경전을 읽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은 경전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가 될 수 없습니다. 진정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가 되려면, 경전의 뜻을 알고 읽어야 됩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부처님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입니다.
그러니 뜻도 모르는 한문 경전을 읽을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번역된 경전을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봉축법회 관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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