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義務로 살지 맙시다
‘아니하지 못할 일. 곧, 맡은 바 직분’이라는 뜻을 갖는 낱말이 의무(義務)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을 감당하는 처지에서 본다면, 선택의 여지는 눈곱만큼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의무가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마쳤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느새 새롭게 짊어져야할 또 다른 상황과 마주합니다. 국민의 4대 의무와 같은 법률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가족에 대한 의무라든지, 직장인으로서의 의무와 같은 지극히 주관적(主觀的)일 수밖에 없는 갖가지의 틀을 형성하기 마련입니다.
이와 같이 ‘나’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한, 치루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가 밀려오는 파도마냥 끊이질 않습니다. 아니, 보다 솔직하게 표현합시다. 의무를 앞세우며 충실하게 사는 자신의 모습이 다양하게 변해갈 뿐입니다. 그리고 겪어가는 그 과정(過程)마다 나름대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모자람을 탓하면서 말입니다.
따라서 ‘아니하지 못할 일’인 의무를 앞세우는 삶은 결코 행복(幸福)하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갖은 애를 쓰며 몸부림쳐봐야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의무 속에서 사는 게 과연 제대로 된 삶인가를 점검하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근본부터 다시 물어야 합니다.
“왜 억지로 의무 속에서 살아야만 할까? 오히려 그와는 달리 그때마다 벌어지는 삶의 기회를 맞이하는 주인공으로 살면 어떨까?”
그렇습니다. 다만 만남과 그에 따르는 성취의 기회가 있을 따름입니다. 할 수 없이 하는 게 아닙니다. ‘할 수 없이 산다’는 태도보다 자신을 더 모독하는 말은 없습니다. 노예와 같은 삶과 동일화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굳이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기회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기에, 기회 아닌 삶이 없고, 삶이 벌어지는 순간마다 성취 아닌 것은 하나도 없게 됩니다.
왜 그러한가요? 인생은 항상 결과(結果)가 아닌 원인으로부터 벌어질 뿐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너무나 결과를 앞세우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익숙합니다. 그만큼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거 아니냐?’, ‘돈만 많으면 됐지 뭐!’ 하는 식의 막무가내 잣대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겠지요.
그러나 결과를 내세우는 온갖 잣대치고 허망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한번 생각해봅시다. 물론 역사(歷史)에 만약은 있을 수 없겠지만, 만약에 칭기스칸의 후손이 미국과 같은 강대국을 세워서 지금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일반인들의 머리 스타일이 무척 달라졌을 것입니다. 몽골족을 기준으로 삼는 미용실이 넘쳐나면서 말입니다.
결과란 어떤 원인(原因) 때문에 당연히 그냥 벌어지고 있는 상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결과를 선택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나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선택하고서 당연히 벌어지는 결과를 미리 떠올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 원인을 지을 따름입니다.
이상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의무를 성취하기 위해 사는 것은, 결과를 앞세우는 태도이기에 참된 행복의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기회를 맞이하려고 할 때, 의무에 따르는 결과는 자연히 성취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기회(機會)를 지향하는 이런 삶의 태도를 좀 더 밀어붙여 봅시다. 먼저 결과로서의 의무를 앞세우려는 삶의 시도를 전면 포기(抛棄)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결과에 대한 집착만 없다면, 삶에 대한 두려움도 없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일생동안 삼진아웃을 1330번 당한 야구선수를 떠올려 보십시오. 결코 만만치 않은 수치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평가를 내리지 않을까요? ‘정말 별 볼 일없는 선수구나!’
그런데 같은 사람이 홈런을 714개나 때렸다고 합니다. 실로 엄청납니다. 그것도 최고의 야구시리즈라고 하는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시 이런 평가를 내리지 않을까요? ‘정말 신화적(神話的)인 선수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 모든 삼진아웃과 홈런의 기록이 바로 저 유명한 ‘베이비 루스’라는 선수가 남긴 것이라는데 한층 혼란스러워 하면서….
재미난 기록 아닙니까?
홈런의 영광 그 이면(裏面)에는 2배에 가까운 삼진아웃을 당한 쓰라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삼진아웃을 자신의 삶으로 껴안지 못하는 사람은 홈런을 때리지 못함을 뜻합니다. 만약 ‘삼진아웃은 내 인생이 아니고, 홈런만 내 인생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야구선수가 아닐 것입니다. 운동장에서 경기를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도저히 그렇게 무모한 주장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에 대한 걱정을 앞세우면서, 의무(義務)에 충실하면 그만인 게 아닙니다. ‘유종(有終)의 미(美)’라고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끝까지 잘할 때, 훌륭한 성과를 올리기 마련입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 있어서 다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그때마다 마감을 할 줄 아는 결단(決斷)으로부터 바람직한 결과가 따릅니다.
그런데 끝이라고 하니까 그것으로 끝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일 뿐입니다. 인생은 항상 끝에서 시작하기에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처음이 아니라, 마감하는 순간순간 생명은 아름다움을 피워냅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그때마다 아름다움이기에, 새삼스레 특별한 아름다움을 추구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해서 무한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발견한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하라고 다가오고 있는 게 삶의 정체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아름다움 즉 결과(結果)를 앞세우게 되면, 나머지 아름다움을 지레 추한 것이라고 여기며,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마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됩니다.
지금 혹시 온갖 결점이나 단점 등과 같은 못난 그림자에 얽매여서 시달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과거의 어두운 행적이나 경력으로 해서 스스로 위축되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마이너스적인 요소들을 오늘이 가기 전에 쭉 한번 꺼내서 나열해보세요. 누구와 따로 상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식하고도, 부인하고도, 남편하고도, 부모하고도 의논할 사항이 아닙니다. 내가 겪어온 세월들에 묻어온 모든 것들을 다 꺼내는 겁니다. 좋고 나쁨이나, 깨끗하고 더러움을 판정하는 잣대일랑 저 멀리 던져버리고 그냥 다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바로 옆에 앉아있는 식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니 조금도 부끄러워하며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하느냐? 간단합니다. ‘안녕!’ 하며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 모든 것들은 지난날을 살아온 결과에 지나지 않으므로, 적어도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더구나 지금 살아가며 성취하여야 할 의무(義務)도 아닙니다. 오늘은 오늘의 원인(原因)을 짓는 참으로 귀한 생명을 드러낼 순간이기에 말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법문들으신 소감, 댓글 환영합니다~~~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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