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모시는 범활입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을 자기 생명의 중심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생명의 중심에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사는 것입니다.
즉, 부처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부처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가 되려면 먼저 중생이 아니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중생이라는 생각만 내버리면
거기에 나의 참생명인 부처님생명이 드러납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아난존자가
“부처님께서 열반하셔서 계시지 않을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해야 합니까?”라는 물음에
“번뇌 망상에 들끓고 있는 너의 근본 생명으로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법이고 진리이기 때문에
밖에 의지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밖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을 외도(外道)라고 합니다.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를 외도(外道)라고 하는데,
다른 종교들은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 밖에서 천국을 찾고, 내 밖에서 진리를 찾으며 헤매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입니다.
하지만 내 밖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은 미신(迷信)입니다.
불교는 내 안의 부처님을 의지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꼭 실천해서 나도 부처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께 의지한다는 것은 말로는
내 밖에 계신 분께 의지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참으로는 나의 참생명인 부처님생명께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명의 중심으로 모시는 법우로 사시길 축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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