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모시는 범활입니다.
지나온 삶은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분명 끝난 사건입니다.
그래서 숙명(宿命)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지나온 삶의 축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숙명입니다.
지나온 삶을 온전히 수용합니다.
있는 그대로 결산하며 삽니다.
생명(生命)은 흐르고 흐르다가,
삶이 펼쳐지고 있는 바로 그 장소 그 시간마다
활동할 따름입니다.
생명이 택한 결과가 여기서 지금 살고 있는 상태입니다.
숙명이란 있는 그대로의 흔적에 지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숙명은 닫혀있는 게 아니라
이 몸을 갖고 태어나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과정을
모두 거친 생명의 흔적입니다.
오늘의 관점에서는 오직 무조건적인 받아들임만 있습니다.
생명은 비교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서 완전이며 완전을 드러내는 것이 생명입니다.
모두가 다 절대생명이며,
상대적인 비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어떤 존재로 살아갈 지 진정으로 지향할 바를
선택해야 합니다.
인생은 창조의 연속입니다.
발견과 동시에 창조가 일어납니다.
자신의 생명이 지나온 내력을 안다는 것은
현생(現生)에 체험해야 할 것이 그만큼 많음을 시사합니다.
알고 있다는 것은 결코 아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세상에 증명해야 합니다.
이는 구체적인 체득의 기회를 겪음으로써,
비로소 그 앎이 완전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현상 너머의 의미를 알아채는 사람은
참으로 생명의 움직임을 볼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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