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모시는 범활입니다.
부처님과 우리는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는 데 차별이 없습니다.
한생명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점은 우리도 부처님생명을 살면서
그런 생명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생명을 살고 있으면서
부처생명을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중생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우리와 같은 생명을 살고 있지만
우리와 다른 것은 생명의 절대무한성을
깨치신 것입니다.
참생명은 시간적으로 영원한 생명이기에
이 세상에 언제 태어난 바도 없고
언제 죽는 것도 아님을 깨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은 부처님생명만 존재하고 있으므로
남이 없고 모두 나인 일인칭의 세계만 있다는 진리를
깨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간적으로 영원하고
공간적으로 절대적인 생명,
즉 아미타인 것입니다.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 합니다.
깨친다는 말은 본래 있어 왔는데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즉, 깨쳐서 부처가 된다는 말은 깨치기 전에도
부처였다는 말입니다.
부처이면서 부처노릇 못 하다 부처라는 것을 알고
부처노릇을 하는 것뿐입니다.
깨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치지 못했더라도
믿으면 그만입니다.
내 밖에 있는 다른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깨치기 전에도 부처님생명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으면 그만입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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