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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와 부처끼리 찬탄의 노래를 부릅니다

문사수 2024.07.24 조회 수 113 추천 수 0

부처와 부처끼리 찬탄의 노래를 부릅니다

법문 여여(如如)법사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 이라는 생명 선언은 분명한 삶의 실상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대나무를 깎아서 피리를 만들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들녘을 거닐다가 손에 잡히는 풀을 뽑아서 풀피리를 불 줄도 압니다.

텅 빈 줄기에 입김을 불어 넣자마자 갖가지 소리가 귓전을 울립니다.

잘만 불면 내지 못할 소리가 없을 듯합니다.

이렇듯 비어 있는 줄기에서 엄청난 소리가 나옵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아무것도 없는 듯한데 그 빈자리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본래 생명력이 솟아나는 바탕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럼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삶의 내용을 아는 것과 살아가는 것으로 나눈다면, 아직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게으르거나 어리석거나 둘 중 하나에 속합니다.

그러다가 끝내 충족되지 않기에, 스스로 윤회의 수레바퀴를 따라갑니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학교에 다시 입학하는 생사(生死)를 되풀이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아는 그대로 살아갈 때, 참으로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을 드러내어 실현할 때, 비로소 온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는 곧 나를 향해서 모든 부처님께서 찬탄하신다.” 는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인생찬탄(人生讚嘆)입니다.

 

이처럼 오늘도 오시는 부처님들께서 나의 참생명을 찬탄하는 과정은 간단하고도 분명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 찬탄하고, 만나는 인연을 부처님생명으로 찬탄합니다.

찬탄은 찬탄을 낳습니다.

발견하는 찬탄만큼, 찬탄은 빛납니다.

자신이 찬탄 받는 것과 상대(相對)가 찬탄 받는 관계는, 마치 동전의 앞 뒷면과 같습니다.

상대라고는 하지만, 나와 인연 짓는 상대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사람이나 사물 또는 사건이든, 상대가 찬탄 받아야 나도 찬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衆生)은 상대를 중생으로 대할 뿐입니다.

중생인 내가 어떻게 상대를 부처님생명으로 찬탄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스스로의 생명 가치를 찬탄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찬탄을 근거로 상대를 찬탄하는 것입니다.

 

주변이 밝아지면, 나의 삶은 자연히 밝아집니다.

온 세상이 찬탄을 받으면, 그 한가운데 자리하는 내가 가장 큰 찬탄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찬탄하면서 찬탄 받으니,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그런데 나라는 존재는 스스로의 생명가치를 찬탄하는 염불행자(念佛行者)입니다.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 임을 믿기에, 실마리는 쉽게 풀립니다.

찬탄 받고 있는 공덕(功德)을 상대에게 모두 줄 수 있습니다.

받고 나서 주는 게 아닙니다.

 

찬탄합니다!” 하면서, 먼저 주는 겁니다.

그리고 아무리 주어도 상관없습니다.

찬탄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무한히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간이나 장소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춤추는 평가의 잣대는 믿을 바가 못 됩니다.

다른 광경에 눈의 초점을 맞추다 보면, 지척에 있는 상대를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머릿속에 걱정이나 근심 또는 기쁨이나 즐거움 등으로 한껏 채워져 있을 때는, 옆 사람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눈으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귀로 들어도 듣지 못하게 되면, 찬탄 받지 못한다는 가난한 마음에 젖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상대하는 내가 정해진 틀을 기준으로 하여 찬탄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찬탄 받지 못하는 상대가 눈에 띄고 귀에 들리는 한, 그것은 상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상대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찬탄 받지 못한다고 인식하는 나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나의 찬탄을 아낄 까닭이 없습니다.

이미 찬탄 받고 있는 나의 공덕을 빌려주어서 찬탄 받게 하면 그만입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중요치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주목합니다.

사람을 보는 기준은 정해진 게 아닙니다.

같은 상대를 놓고서, 잘못 보았다거나 새롭게 본다는 말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시냇물을 떠먹으려면 손부터 벌려야 합니다.

나부터 확실히 개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쾌한 물로 갈증 나는 목젖을 적실 수 있습니다.

주먹 쥔 손에 가득한 계산과 주장의 아집(我執)을 버리고, 찬탄의 손을 내밉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떠서 먹을 수 있는 찬탄의 생명수를 받아 마시는 겁니다.

 

! 이렇게 찬탄의 가락에 춤추고 찬탄의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도 찬탄하시는 부처님께, 찬탄의 공양(供養)을 올리면서 말입니다.

 

오늘 부처님은 온 몸에서 기쁨이 넘치시고,

오늘 부처님은 아름다운 모습이 청정하시며,

오늘 부처님은 빛나는 얼굴이 돋보이십니다.

오늘 부처님은 위없는 가르침에 머무르시고,

오늘 부처님은 모든 부처님 경계에 머무르시며,

오늘 부처님은 세상의 스승 자리에 머무르십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부처님들은

부처님과 부처님이 서로서로 염불하시고,

오늘 부처님은 모든 부처님을 염불하십니다.

 

나무아미타불!

여여(如如)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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