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는 바와 같이 문사수법회는 정토(淨土)신앙을 표방합니다.
일반적으로 정토신앙이라고 하면, 여기를 떠나서 저 멀리 서쪽 어딘가에 특별히 마련된 행복한 세계로 가는 것이 정토신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정토라는 말보다는 극락(極樂)이라는 말이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극락! 지극히 즐거운 세계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거기에 가면 댄스홀도 있고, 고스톱도 마음대로 하는 세상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극락이란 말보다는 정토라는 말이 더 신앙의 순수성을 나타낸다고 해서 옛날 조사님들은 정토라는 말을 더 많이 썼습니다.
정토(淨土)라는 말은 ‘정화된 세계’라는 뜻입니다. 지저분하고 더럽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그런 세계가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오염된 상태일 뿐이니, 오염된 세계를 정화해 버리면 그곳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적 이상세계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문사수법회가 하는 정토신앙은 다른 신앙을 하는 분들과 다른 것일까요?
예를 들면 여러분들은 법화경도 공부하셨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사례가 없지마는, 일본의 경우에는 정토신앙을 하는 사람들과 법화경을 신앙하는 사람들은 서로 맞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심지어 옛날에는 법화경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정토신앙을 하는 절에 쳐들어가서 스님들을 해하고, 절을 불사르는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그러니까 정토신앙하는 사람들도 들고 일어나서 법화경하는 사람들의 절을 습격해서 싸움을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만약에 이와 같은 정토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문사수법회가 ‘정토신앙을 표방하면서 법화경을 공부한다.’는 말을 듣는다면, 아마 시비하려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겁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음의 소치입니까. 불교는 모든 대립과 한계를 끊어버리는 절대무한의 세계를 지향하는 종교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정토라는 말은 정화된 세계인데, 정화란 일체 모든 대립과 상극을 깨끗이 없앴다는 말이거든요. 대립과 상극은 너는 너고 나는 나로서 생존경쟁을 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 서로 싸우고 시끄럽기가 한량없겠지요. 이 얼마나 어리석은 얘기입니까? 그래서 그런 대립과 상극이 정화되어진 세계, 다시 말해서 절대무한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정토신앙인 것입니다.
또 한편, 법화경을 신앙하는 사람이 정토신앙을 하는 사람보고 “염불하면 지옥에 간다!”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분명히 염불하면 극락에 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염불하면 지옥 간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그 사람들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염불을 하면 나라는 생각이 없어져야 하는데, 남들은 고생을 하거나 말거나 나만 극락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니까 지옥에 간다는 겁니다. 말은 맞습니다.
사실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염불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남들은 굶어 죽거나 말거나, 나만 극락가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극락 가는 생각이에요 지옥 가는 생각이에요? 지옥 가는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 법화경신앙을 일으킨 사람이 “염불하면 지옥 간다”고 그랬어요. 지옥 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데가 무간(無間)지옥인데 염불하면 무간지옥에 간다고 그렇게까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그 사람들이, 우리가 법화경을 공부한다는 것을 알면, 그것은 정토신앙과는 모순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이야기를 할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들의 잘못이지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지금은 제가 나이가 먹어서 일본에 자주 못 가는데, 그 전에는 일본에 초청받아서 법문을 여러 번 했어요. 처음 간 곳은 법화경을 신앙하는 절이었습니다. 법화경강의를 해 달라고 해서 법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더니 일본의 진언종(眞言宗)에서도 와서 법문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또 진언종에 가서 법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법화경하고 진언종은 상극인데, 어떻게 그렇게 양쪽 모두에게 법문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법화경하는 사람들은 ‘진언망국 - 진언을 하면 나라가 망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법화경을 강의하는 입장에서 진언에 대한 법문을 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 맞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다 부처님 가르침 아닙니까?
또 선(禪)에 대한 법문을 한 적도 있습니다. 또 아미타신앙을 하는데 가서는 정토신앙에 대한 강의도 여러 번 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다 따로따로인데 왜 당신은 아미타신앙도 강의하고, 법화신앙도 강의하고, 또 진언신앙도 강의하고, 선에 대해서도 강의하느냐는 거지요. 하지만 사실은 따로따로가 아니잖아요?
한국 불교의 자랑은 통불교(通佛敎)입니다. 통불교란 모든 것이 다 통해 있다는 겁니다. 따로따로가 없다는 거죠. 이것은 우리나라 불교의 자랑스러운 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의 많은 종파의 소의경전(所依經典), 즉 의지하는 바의 경전이 금강경입니다. 금강경은 옛날부터 ‘대승시교(大乘始敎)’라고 이야기합니다. 시교라는 말을 입문이라는 뜻으로만 해석하고 마는데 사실은 바탕이라고 봐야 합니다. 즉 대승불교라는 큰 신앙이 성립되려면 금강경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금강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을 하게 되면 대승불교를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금강경에는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남이 없습니다. 일체 모든 울타리가 부정되는 것이 금강경이에요. 그러니까 금강경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진언종이 따로 있고, 법화경이 따로 있고, 정토종이 따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금강경을 알고서 법화경을 공부해야지, 금강경을 모르고 법화경을 공부하게 되면, 법화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언젠가 불교방송에서 “법화경은 뜻을 알 필요가 없다. 그저 베껴쓰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베껴 쓰는 사경(寫經)은 물론 공덕이 됩니다. 참 훌륭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뜻도 모르고 베껴 쓰기만 해도 된다면, 법화경을 인쇄하는 사람은 무조건 모두 다 극락세계에 가겠네요? 어떻게 이런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열반경 사의품(四依品)에 네 가지, 우리가 바르게 의지해야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입니다. 법에 의지해야지 사람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저한테 법문을 듣고 있지만 저의 인격에 비추어서 생각을 하면 안돼요. 법에 의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다음의 말씀이 ‘의의불의어(依義不依語)’ 즉 뜻에 의지해야지, 글자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변하지 않는 뜻에 의지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법화경에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불난 집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불난 집에서 살면서도 불이 난 줄 몰랐는데, 불난 집에서 나오라고 하니 얼마나 고마운 말입니까? 그러니 부처님은 참 고마운 분입니다. 이 말씀을 잊으면 안 되겠다고 해서 이 말씀을 열심히 베껴 쓴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것만 열심히 쓰고 있으면 불난 집에 남아있어도 되나요? 베껴 썼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지금 여러분 주변에도 법화경을 사경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사경을 하는 이유는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서 실천하겠다는 것이 첫째입니다. 그 마음을 내려고 독송하고, 해설하고, 베껴 쓰는 겁니다. 그 때는 인쇄술이 없었으니까 법을 펴려면 자꾸 베껴 써서 남한테 돌려 읽혀야 하니까 그랬습니다. 지금은 인쇄소에도 안가고 컴퓨터로 얼마든지 출력을 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제대로 알아야 우리의 신앙체계를 확고히, 바르게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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