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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예불문7] 법(法)이 나에게서 드러났다

문사수 2014.08.09 조회 수 20313 추천 수 0

정토예불문 강의(7)


  

()이 나에게서 드러났다.



정토예불문 오늘은 네 번째 지심귀명례입니다.

지심 귀명의 예경을 올리는 구체적인 대상은 삼보(三寶) 즉 부처님과 가르침 그리고 승가, 이 세 가지 절대가치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가치인 달마, 즉 법()에 대한 예경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達磨耶衆

공간적, 시간적으로 제석천의 그물 코 같은
수많은 국토에 항상 계시는 일체 법()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자리로 돌아가 예를 올리나이다.


시방삼세 제망찰해에 대한 의미는 지난 시간에 공부를 했으니 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법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달마야중은 다르마(Dharma) , 법을 말합니다. 불교에서 법()은 세 가지 뜻으로 쓰입니다.

첫 번째, 부처님께서 깨치신 진리의 내용을 법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진리가 설해지는 것,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법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교학적 의미로 해석할 때 개별적인 존재(개념화된 이름도 포함)를 말하기도 합니다.

문맥상으로는 적절한 뜻으로 해석하면 되겠지만 보통 이 세 가지 뜻이 함축되어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은 불교신앙의 핵심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치셨을 때 그 감흥에 대한 독백의 말씀 속에서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법이 나에게서 드러났다


깨달음은 이미 법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보편적인 것이 법입니다. 법은 본래 그렇게 있어왔고, 어느 누구든 그 법의 원리를 알아차리기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때를 법과 하나가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법과 하나 된 상태의 인격적인 모습을 '부처님'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법을 깨닫기 전에는 법과 나는 어떤 상태인가? 나와 법이 따로 따로 있다가 깨닫는 순간 비로소 하나가 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법은 보편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법이 아닙니다. 법은 깨닫기 전에도 이미 나와 하나이어야 합니다. 애당초 하나인 것입니다. 그런데 법이 내 밖에 따로 있다는 생각으로 사는 게 중생입니다. 논리적으로 좀 더 생각해보면, 법이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니 나는 이미 법속에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과 나의 관계는 어때야 할까요? 이 또한 마찬가지로 법밖에 존재할 수 없으므로 나와 남도 이미 하나입니다.

보통 ''''가 하나라는 사실은 머리로는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됩니다마는 ''이 하나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자칫 관념화된 신앙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습니다.

같은 집에 살면 가족이라 하고 같은 나라에 살면 동포라고 합니다. 같은 행성에 살면 지구인입니다. 같은 우주공간에 살고 있으니 우리는 모두 우주인입니다. 가족은 다른 가족과 대립하기 쉽고 나라는 다른 나라와 대립하기 쉽습니다. 지구인은 다른 행성과 대립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우주인이란 생각은 상당히 넓은 포용성을 가지는 것이지만 대립의 상을 극복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포용할 수 있는 외연의 폭을 넓히는 것으로 어느 정도 대립을 극복할 수는 있지만 완전하지는 못합니다. 또한 그 반대로 우주인, 지구인, 동포, 가족 등의 테두리에서 더 소급해 들어가면 ''라는 테두리를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과 대립하게 됩니다. 크든 작든 외연이라는 테두리가 있으면 대립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외연이라는 테두리가 없을 때 완전하게 대립상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절대(絶對) 즉 대립이 끊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없다[無我]'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시간상으로 보면 '이미, 지금, 언제나'인 것이고, 공간상으로 보면 '여기, 어디서나, 누구나'라고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법()의 보편성입니다.



잊지 말아야할 것은 법은 본래 이미 절대 보편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부처님이 노력해서 대립을 끊은 것이 아닙니다. 법은 본래 대립된 적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나도 법이고 너도 법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이고 너도 나인 한생명입니다.




그렇다면 절대이고 보편한 ''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부처님께서 깨치신 법을 굳이 이름 붙여서 표현하면 연기법(緣起法)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서로 의존하여 생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서로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얘기이고, 이는 결국 모든 존재가 유기적으로 한생명임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나다 너다 라고 주장할 것이 실제로 없는 것입니다.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 티끌만큼만 있어도 이는 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불자는 이 절대무아법에 지심귀명례 합니다.

이처럼 듣긴 들어도 참으로 믿기 어려운 법을 깨치셔서 그 법을 중생들에게 가르쳐서 깨우치는 부처님의 자비의 가르침이 또한 법입니다. 억겁의 무명장야에서 헤매던 업() 때문에 죽었다 깨어나도 깨우치기 어려운 ''을 소상히 가르쳐 주시니 그 은혜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신난득 불법난봉(人身難得 佛法難逢)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불자는 부처님의 자비설법에 지심귀명례 하는 것입니다.법의 보편성에 눈을 뜨면, 소소한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 됩니다. 삼라만상이 법 아닌 게 없기 때문에 현상 하나하나가, 귀한든 천하든, 좋든 싫든 추하든 아름답든, 크든 작든 간에 그 자체로 법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 분별들은 내가 덧붙인 꼬리표일 뿐입니다. 분별하면 망상(妄想)입니다. 그런 분별망상에 속지 않고서 볼 때 자질구레한 일상의 것들이 참으로 소중한 ''이 됩니다.

그러므로 불자는 법의 나툼인 삼라만상에 지심귀명례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법에 대한 귀명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법에 귀명한 자는 법에 맡겼으니 법다움으로 살려지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희유(稀有)하다 할 뿐입니다. 나무!().


<문사수법회 정신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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