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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예불문6] 겁내지 마! 우린 부처야!

문사수 2014.04.10 조회 수 27462 추천 수 0

정토예불문 강의(6)


  

겁내지 마! 우린 부처야!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자리에 돌아가 예를 올리나니,

시방과 삼세에 제석의 그물처럼 수많은 국토에 항상 계시는 모든 부처님들이시어.


오늘 정토예불문은 세 번째 지심귀명례입니다. 우선 뜻부터 하나하나 풀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시방(十方)은 열 군데 방향인데 십방이라고 읽지 않고 시방이라고 읽습니다. 동남서북 사방이 주된 방향이고, 각 방위와 방위 사이에 또 간방이 있지요. 이를 합쳐서 팔방이라 합니다.이 팔방은 평면적인 2차원 구도인데, 여기에 상하 즉 위 아래가 더해지면 3차원 입체 공간이 됩니다. 즉 모든 공간을 통틀어 시방이라고 부릅니다.


삼세(三世)는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시간적 흐름입니다. 그러므로 시방삼세는 모든 공간 모든 시간을 의미합니다.


제망찰해(帝網刹海), 제망이란 제석천(帝釋天)의 그물을 말합니다. 찰해(刹海)는 육지와 바다 즉 하나의 세계를 얘기합니다. 제석천은 경전에서는 불법을 보호하는 신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인도의 종교신화 속에서는 인드라신이라고 불리우며 번개를 관장하는 신이기도 합니다. 특징적인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무기인데, 하나는 금강저(金剛杵)이고 또 하나는 그물입니다. 금강저는 어떤 무엇도 다 깨뜨릴 수 있고, 거기에 닿기만 해도 산산조각 부서뜨릴 수 있는 일종의 창입니다. 그리고 그물은, 던지기만 하면 빠져나갈 수 있는 중생이 없이 다 건져낸다는 겁니다. 그 만큼 제석천의 그물은 촘촘히 짜여 있는데, 그 그물코마다 보배구슬이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참으로 장엄스럽습니다. 마치 밤하늘에 은하수처럼 별들이 빼곡히 박혀서 빛나고 있는 것을 상상하면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보배구슬들은 당연히 서로가 서로를 반사하고 비춥니다. 이러한 장관을 화엄경에서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첩되는 것이 끝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모습은 우주의 만 생명들이 서로 서로 인연 속에서 의지하며 관계를 맺고 있다는 연기(緣起) 법칙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주 비유되곤 합니다.


예를 들어 거울 두 개를 서로 마주하여 놓고 그 가운데 내가 서 있으면, 이 쪽 거울에 내 모습이 보이고, 그 거울 속의 반대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또 보이고, 또 그 속에 있는 거울 속에 내가 있고... 이렇게 끊임없이 내 모습이 펼쳐져 보이잖습니까? 중중무진이란 그렇게 끊임없이 펼쳐져 보이는 세계를 말합니다. 거울 두 개만 있어도 그 무한히 이어지는 모습이 엄청난데, 그물코에 달린 수많은 구슬과 구슬들이 비추이는 모습은 어떨까요?


특히 구슬은 동그랗기 때문에 한 구슬에 수많은 구슬들이 비칠 것이고 그 비추인 구슬 속에 또 수많은 구슬들이 비추일 것이니 그 관계성은 가히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우주 생명이 존재하는 원리와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 중중무진인 것입니다.


이것과 저것이 서로 비추고 또 비추어서 서로가 얽히고설켜 있으니 이것이다 저것이다 주장할 수 없고, 그래서 주관과 객관이 허물어짐으로 한생명을 이루어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의 실상을 바로 제석천의 그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석천의 그물과 같은 우주 삼라만상 속에 항상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일체불타야중, 즉 모든 부처님들이 계시다는 겁니다. 불타야(佛陀耶)는 인도말 붓다(Buddha)를 음사한 말인데 다들 아시다시피 부처님이란 뜻입니다. 중(衆)은 무리를 가리키니 복수를 의미합니다. 부처님들이 계신데 얼마만큼 계시느냐? 제석천의 그물만큼 많은 국토에 계시다는 겁니다. 다시 얘기하면 부처님은 무한한 세계에 무한으로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한으로 계시는 부처님들께 지심귀명례를 올리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이 계시는 분입니다. 이런 말씀 속에서 우리의 경험과 지식과 논리를 떠난 차원에 대하여 어렴풋이나마 무한을 짐작하게 됩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잘 안되어야 정상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한(無限)이 내 머리 속에서 계산되어진다면 그것이 무한이겠습니까?


결국은 우리의 머리로 헤아리고 판단하고 또 그걸 측정하려고 하는, 그 너머의 세계가 불법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에는 이런 말씀들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불가설(不可說) 설할 수 없고, 불가해(不可解) 이해할 수 없고, 불가칭(不可稱) 일컬을 수 없어 측정할 수 없고, 불가사량(不可思量) 생각할 수 없고.... 이런 말씀들이 경전에서 계속 되풀이 되는 이유는 나의 알량한 지식과 경험과 잣대로 부처님을 가늠하여 추측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할 일이 없어진 것 같아서 굉장히 불안해지지요? 그런데 그게 진짜 편안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온전히 부처님께 맡겨 드릴 수 있는 것이기에 절대안심입니다. 이것이 지심귀명례인 것입니다.


저 바다에 멀리서 파도가 일어납니다.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오면 점점 더 큰 파도가 됩니다. 그 파도들이 대화를 나눕니다. 한 파도가 자기가 점점 커지니까 신이 났어요. 그런데 저 멀리 해변가를 바라보니 저기 절벽에 파도가 철썩 부딪혀서는 산산히 부서지는 겁니다. 자기가 조금 있으면 저런 운명에 처할 것을 알고 겁이 잔뜩 나서 옆에 있는 파도한테 말합니다.


“너도 봤니? 우리의 미래 모습이 저거야. 산산이 부서지고 말거야. 우린 어쩌면 좋아. 난 가기 싫어!”


이렇게 아우성 치고 있을 때 그 옆에 있던 파도가 말했습니다.


“우린 파도가 아니라 바다야!”

이 비유를 어느 책에서 보았는데 참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우린 바다야! 겉모양은 절벽에 부딪혀서 포말로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겠지만, 그럼 어때? 우린 바다인 걸...'


우리가 현상적으로 어떤 모양이 우리 생명인 줄 알고 삽니다. 하지만 우리의 진짜 생명은 무한임을 믿습니다. 부처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 무한한 부처님께 나를 개방해 나갈 때 절대 안심감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지심귀명례입니다.


“겁내지마! 우린 부처야!”   <계속>


<문사수법회 정신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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