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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환자가 아님을 보세요

문사수 2013.06.26 조회 수 36218 추천 수 0

   세상의 모든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병이라는 현상에도 숨겨진 이유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나는 문병(問病)하러 가는 분에게 꼭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방문하는 사람을 환자로 생각하는 한 병실의 문을 두드리지 마십시오.”
 별스러운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문병하는 많은 사람들이 건네는 위안의 말들이 거짓으로 가득 찼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얼핏 겉으로는 웃음 짓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딱한 심정을 감추면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렇게들 위로하더군요.
 “금방 나을 거야.”
 하지만 그 사람의 솔직한 마음을 보태서 말한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요?
 “(너는 확실히 병의 지배를 받는 환자야. 이는 곧 병이 대단한 힘을 갖고 너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과 같아. 너도 그것을 인정해야 된다. 따라서 너는 병과 싸워서 이기는 수밖에 없어. 그런데 나는 네가 병이 낫기를 바라고 있거든. 그러니) 금방 나을 거야.”
 물론 나쁜 마음에서 말미암는 것은 아닙니다만, 참으로 병이 있는 것이라면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그것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아무리 단단해도 아예 깨뜨려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이아몬드 분자의 결합한 상태가 깨지는 순간, 이미 다이아몬드가 아닙니다.
 대개의 환자는 병을 실체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듯이 병의 실체를 공증(公證)이라도 하려는 태도로 문병을 간다면 얼마나 어이없는 짓이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불교사(佛敎史)에 등장하는 유사한 두 인물을 떠올리게 됩니다.

 먼저 아사세왕을 봅시다.
 아버지 빈비사라왕(王)과 어머니 위제희부인은 돈독한 신심을 갖고 있는 불자였습니다. 그들은 이웃나라를 침략하기보다는 사이좋게 살기를 바란 평화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사회복지가였고, 불교교단 수행자들의 살림살이를 올곧게 지탱하는 참된 의미의 장자(長者)이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아들 아사세왕자는 끓어오르는 명예심과 소유욕을 억누르기에는 너무나 젊었습니다. 호시탐탐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아사세왕자. 그에게는 다만 명분만이 부족할 따름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접근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제바달다였습니다. 혹은 조달(調達)이라고도 알려진 사람으로, 수차례나 부처님을 살해하려고 했던 바로 그 사람이지요.
 마침내 제바달다의 꼬임에 넘어간 아사세는 아버지를 향해 창을 겨눕니다. 전생에 히말라야에서 수행하고 있던 자신을, 아들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죽였다고 하는 현생의 아버지. 사실 여부를 떠나서 드디어 명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들이 설사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가 아들과 무기를 맞대고 싸울 수는 없는 법. 마침내 무혈입성한 아사세는 아버지인 빈비사라를 감옥에 가두어 굶어 죽이고 맙니다. 이렇게 해서 왕으로 등극한 아사세는 알 수 없는 종양에 시달리지만, 부처님 전에 참회하고 병고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또 한사람은 세조보다 수양대군으로 익히 알려진 인물입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새삼 다 소개할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주목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키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세조는 후환을 없애야 한다는 권신들의 주장에 굴복하고 맙니다. 영월로 유배간 단종을 죽이고 만 것이지요. 이로부터 심한 종양에 시달리지만,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그러다가 원래 불자였던 인연으로 오대산으로 휴양을 갔는데, 어느 날 계곡에서 문수동자(文殊童子)를 친견하고 종양이 터지며 피고름이 나오고 병이 나았습니다. 이 영험담은 아직도 우리들의 귀를 잡아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차마 못할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논평으로 끝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죄를 지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에, 인과법칙에 따라서 현실세계에 드러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현실의 괴로움이란 자신의 참생명을 직시하지 않는데서 말미암습니다. 마치 글을 읽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 글을 대하지 않는다면 문맹(文盲)과 다르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글을 배우는 이유는 글을 읽어서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지, 글을 깨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글을 깨쳤어도 전혀 글을 대하지 않는다면, 전혀 글을 모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거니와,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음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은 괴로움을 참으로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어선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래 삶이 아닙니다. 이미 주어져 있는 무한한 생명의 가치를 깨달아 갈 때, 감히 살아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너도나도 공기오염을 입에 올립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만이 아닙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도 농사를 짓는 사람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한 소리를 냅니다.
그렇지만 막상 잘못된 말과 생각이 세상을 얼마나 오염시키고 있는 지에 대한 심각성은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병이 낫는 것은 병이 나게 된 원인이 소멸될 때만 가능합니다. 발생의 원인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결과가 없어지겠습니까?
 자신의 생명 가치를 물질로 보는 데 따른 불행한 삶은 한 개인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만나는 다른 생명도 물질로 대하게 되므로 또 다른 불행을 전파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물질로 산다는 발상은 출발부터가 가당치 않은 시도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과 물은 단순한 물질이 아닙니다. 생명을 유지케 하는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만약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는 온갖 부속품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기계에 지나지 않겠지요.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온갖 생명현상을 연출하는 삶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울고 웃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들으면 가슴이 미어지고, 기쁨의 현장에 가서는 함박웃음을 터트리게 됩니다. 음식과 물을 먹어서 우리의 생명이 살려지듯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도 생명의 교류는 항상합니다.
 사회적인 통념상 고아(孤兒)란 부모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고아가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든 언젠가는 부모와의 영결을 맞이하게 됩니다. 누구나 지금은 고아가 아닐지라도 고아가 되는 것이지요.
 결국 세상에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고아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진정한 관심과 사랑이 없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상태가 고아라는 말이 됩니다.
 우리 스스로의 생명가치를 부처님 생명이라고 의심치 않을 때, 만나는 다른 사람도 물질이 아닙니다. 내가 고아가 아니듯이 그도 고아가 아닙니다. 모든 생명은 다만 부처님생명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부처님 집에 함께 사는 형제자매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문병을 가서 위안의 말을 건네는 사람이 비록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참으로 병이 쾌차하기를 바란다면 오히려 이렇게 당당하게 선언해야 할 것입니다.
 “너는 자신을 환자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환자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다. 병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현상이다. 잘못된 인연의 법칙에 따라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인연을 맺으면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중생생명이 아니다. 물질(物質)로 이루어진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본래부터 부처님의 생명이 우리의 참생명이다. 너의 참생명인 부처님 생명은 병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렇다. 너는 깨달아야 한다. 너의 유일한 실재는 부처님 생명밖에 없다는 것을.”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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