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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의 진리

문사수 2012.02.22 조회 수 28212 추천 수 0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의 진리

 과거는 진정 지나갔을까? 
 우리 모두 초등학교 때를 떠올려 보기로 합시다.
 그 당시로서는 유치원시절이 과거가 되고 중학교 때는 미래가 됩니다. 또 5학년 때를 생각한다면 5학년은 현재가 되고, 6학년 때를 떠올리게 되면 미래가 됩니다. 이렇게 과거에도 과거가 있고, 과거의 현재가 있고, 과거의 미래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에도 과거가 있고, 현재의 현재가 있고, 현재의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과거가 있고, 미래의 현재가 있고, 미래에도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이건 상식적으로 납득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과거·현재·미래를 일러서 삼세(三世)라고 하는데, 이를 모두 합치면 각기 삼세가 있으니까 3×3 = 9세(世)가 됩니다.
그리고 이 구세(九世)를 동시에 생각하는 지금이라는 절대현재(絶代現在)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언뜻 보면 무척 어려운 시간대인 것 같지만, 이 절대현재의 시간까지를 합하여 십세(十世)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절대현재의 입장에서 이 시간의 주인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 각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가 어떤 것으로 있다고 생각하고 미래는 앞으로 있을 미지의 세계라는 막연한 감정마저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 모두에 있어서 생명의 주인은 우리들 각자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생명의 주인이기보다는 생명에서 제한되어 있는, 선택된 어떤 시간과 공간의 주인 되기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고등학생인 경우에는 마치 고등학생임을 운명인양 받아들이며, 여자인 경우에는 여자라는 정의가 참으로 막연한데도 당연히 여자라고 합니다. 아들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도 실재하지 않는 개념·실재하지 않는 모습인데 우리는 그것을 부여잡고서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때문에 인생은 종횡(縱橫)으로 계속되는 대립구도를 낳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시도 때도 없이 내 것을 챙기기에 급급하지만 막상 얼마나 가져야 만족하게 될런지, 그리고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에는 관심도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누가 내 것을 조금만 가져가려고 하면 두 눈을 부릅뜨고 인상을 씁니다. 마침내 신경성 위장병이라는 기괴한 이름의 병에 걸려가면서 성질을 냅니다.
 경험이나 지식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걸 가지고서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찬 단정을 너무도 쉽게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불행해지는 것은 저쪽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닫혀버린 내 쪽입니다. 쫓기면서 두려워하고, 마침내 공포의 자식이 되고 맙니다.
 이러니 하고자 하는 일이 잘될 턱이 없고 뜻한 바대로 풀릴 리 만무합니다. 생명을 만나서도 물질로 대하고 나의 이용물로 대하니 거기서 행복의 꽃이 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오묘한 것은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모습들이 하나도 모순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 겉모습이 모두 달라서 거북스럽다고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세상에 잘생긴 사람, 못생긴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 평가기준이 뭐냐는 것입니다.
 키 작은 사람, 키 큰 사람, 또 혼자 사는 사람, 가족이 많은 사람 등 실로 갖가지 모습이고 이 사람들이 모여서 지금의 자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표현되는 것이 다양한데도 충돌 없이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가 앉아있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사실에 새삼 눈을 떠야 합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우리는 엄청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과 그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세상을 볼 때나 사람을 볼 때 일방적으로나 일면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이미 인생의 법칙에 걸맞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부인인 사람이 친정에 가면 딸이 되고, 나에게는 며느리인 사람이 친정에 가면 어떤 사람의 누이가 되는 다양성, 이것이 우리의 본래 면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자꾸 눈감아 버리고 제한시켜 갑니다.
 그럼 이쪽에서 제한한다고 해서 과연 상대방이 제한될까요?
 재미난 것은 저쪽에서 나를 뭐라고 하든 말든 나로서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끊임없이 표출한다는 것입니다. 제한하고 있는 그 사람으로서는 섭섭하겠지만 자기 혼자 제한되고 있을 뿐이지, 상대는 제한되지 않습니다. 이 점이야말로 생명현상의 엄연한 사실입니다. 생명은 무한한 가능성을 이미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를 가리켜 우리 불가(佛家)에선 「여래(如來, Tathagata)」라고 합니다. 그와 같이 오셨고 또 그와 같이 가신 부처님을 뜻하는 그 말입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생명의 주인이니까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옵니다.
 이와 같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만이 아니라 천백억이라고 하는 것은 무한수(無限數)를 의미하므로, 삶에서 벌어지는 무한한 변화의 주체가 바로 「나」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인생이 항상 변화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래!  내가 어느 때엔 실망하고 낙담하였는데, 알고 보니 변화의 주체래!」하는 반가운 소식인 것입니다.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진짜 이 점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 저 모습으로 다가온 부처님생명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깨우쳐주시려고 나타났기에, 무조건적으로 부처님생명으로 대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 말입니다.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가슴에는 희망의 물결이 넘실대고, 눈에서는 열정의 불꽃이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보름달보다 더 환한 미소를 띈 얼굴로 말입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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