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듣기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문사수 2011.08.19 조회 수 26212 추천 수 0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무량수경은 48가지의 부처님 원력(願力)을 설명해 놓은 경(經)입니다. 그 48대원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18번째 원을 왕본원(王本願)이라고 하는데,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참생명은 부처님 생명이니
제가 부처님생명으로 사는 시방의 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원해서
나무아미타불 십념(十念)을 하면
저의 부처님나라에 태어나게 하겠습니다

 이 원(願)의 핵심은 나무아미타불 십념을 하면 극락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지극한 마음으로 극락에 태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야만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극락에 태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고 하니까,
 “극락세계가 어디 따로 있는 세계가 아닌데, 어떻게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느냐?”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괴로움의 세계를 사바세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절대무한의 세계를 극락세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바세계를 떠나지 않고는 극락세계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사바세계를 떠난다는 것은 ‘사바세계 어떤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간절히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재산이든, 애정이든, 건강이든, 세력이든, 사바세계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간절히 일으키는 것, 이것이 바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사바세계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염원이 바로 ‘나무(南無)’입니다. 이렇게 ‘나무’하는 것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원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나무아미타불만 부른다고 극락에 가는 것이 아니지요.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요술과 같은 작용을 일으켜서, ‘그래, 네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니까 극락 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사바세계에 대한 집착을 여의게 되고 그래서 극락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부처님이 자기를 믿는 사람과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을 차별하겠습니까? 차별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차별하지 않습니다. 진리란 언제 어디서나 있는 절대평등 그 자체이기 때문에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불교를 믿으라고 합니까?
 부처님 쪽에서는 차별이 없지만, 이쪽에서 믿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부처님의 원력(願力)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법문을 믿는다는 말은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는 얘기가 됩니다. 부처님 쪽에서는 부처님을 믿어야 한다는 조건이 없지만, 내가 믿지 않으면 문을 꽉 닫아놓은 것이 되고 믿으면 문을 활짝 여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문을 활짝 열면 저절로 극락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극락세계에 가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바세계인 상대유한의 현상적인 세계에 대해서 어떤 집착도 하지 않아야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현상세계에 어떤 의미의 애착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경전을 읽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경전을 읽게 되면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이 저절로 떨어져 버립니다. 집착이 떨어진다는 것은 상(相)에 대한 집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고,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떤 겉모양이 나타나든지 그것을 인정치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의 내용입니다.
반야심경에서도 모든 현상은 공(空)이요,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집착하지 말라고 나옵니다.
 모든 현상은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부정하는 마음이 철저해졌을 때, 절대무한 세계를 찾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절대무한밖에 내가 갈 곳이 없구나’를 생각하고, 절대무한 세계가 드러나도록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상대유한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상대유한 세계의 어떤 것이라도 인정하게 되면 절대로 절대무한 세계에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상대유한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은 극락세계에 갈 수 없습니다. 극락이란 말은 절대 무한이란 말이고, 절대무한 세계는 상대 유한을 조금도 남김없이 부정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상대유한을 부정하는 것'나무' 라고 합니다.
 이렇게 '나무' 했을 때 절대무한이 저절로 드러납니다.
 이 절대무한이 바로 '아미타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나무아미타불 염불정진을 하는 겁니다. 해답이 나올 거 같아서 정진하지만, 한참 정진하다보면 해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드러날 뿐입니다.

 따라서 법회에 나와서 법문을 듣고 정진하는 것 말고는 인생의 참의미가 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법문P1130278.JPG 
2010년 발심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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