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듣기
 

정진으로 생명의 깃발을 올려라

문사수 2011.04.14 조회 수 27957 추천 수 0

 정진으로 생명의 깃발을 올려라

 우리가 단순한 사회적 관계를 넘어서 생명의 흐름을 갖지 않는다면, 설사 어떤 사람과 몇 백년 동안을 만난다 해도 그것은 몸을 부딪히며 시간을 보낸 데 불과합니다.
 반면에 하루를 만나도 참생명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이야말로 삶의 보람이요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말과 같이 쉽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는 정진(精進)을 하게 됩니다.
거짓된 행동이나 말에 가리워 있음을 자각한 이상, 더 이상의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단(決斷)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참생명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을 다음으로 미룰 수 없다는 절박감(切迫感)으로, ‘나’와 ‘나의 것’으로 불리는 삶의 모든 조건들을 전면 재검토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면 정진의 과정(過程)이 기대만큼 즐거우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진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품게 되는 불만이 있습니다.
 “아니, 왜 더 괴로워져요? 공연히 시작했나 봐요. 그나마 가만히 있던 마음이 뒤죽박죽입니다.”
 이를 이상하게 듣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제일 많이 듣게 되는 푸념입니다. 정진을 하게 되면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더 괴로워지는데 따른 황당함과 불안(不安)한 심리를 솔직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상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따름입니다.
 정진을 한다는 것은 고정된 삶의 유한성(有限性)을 마주하는 작업입니다.
몸만 떠나면 만사가 순조로우리라는 기대는 너무나 안일한 착각입니다. 여태까지 익숙했던 현실을 벗어난다는 게 생각같이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정진은 출가(出家)로도 표현됩니다. 

 물론 정진은 자발적(自發的)이지만, 점차 깊이를 더할수록 괴로움이 따르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이 환합니다. 그 동안 얼마나 믿고 의지하던 현실인데, 막상 그것의 허구를 인정한다는 것은 괴로움에 틀림없습니다. 굳이 시간적인 구분을 해서 설명하자면, 과거를 기준으로 한 삶의 해석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데 따른 당혹감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진을 싫어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엄청난 역설(逆說)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는 정진을 하지 못한다는, 어찌 보면 말도 되지 않을 국면(局面)이 그것입니다.
 몸을 중심으로 설정한 내가 온갖 정성을 드려보아야 끝내 유한성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애당초 스스로를 한정시키고 있기에, 그 범주를 벗어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을 바란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한정된 나는 정진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멍청하게 정진을 포기하고 말아야 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나는 정진을 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깨뜨리기 위해서, 하기 싫은 정진을 해야 한다는 또 다른 역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유한적인 존재로 머무는 한, 마지막 귀착점은 죽음이외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전면 거부하는 정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의식(危機意識)이 발동한 사람에게는 망설일 새가 없습니다. ‘나의 참생명은 육신생명이 아닙니다. 육신으로서의 나는 완전한 의지처가 되질 못합니다’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나무(南無)!’를 수없이 다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즉시 몸으로 반응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바로 온몸을 통해 ‘나무(南無)!’를 드러내게 됩니다. 
 앞에서 정진은 출가의 속내라고 했습니다. 출가한 사람은 이제 내세울 만한 나의 소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상대적(相對的)인 집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소유에 의해서 ‘대접받기에 급급하던’ 내가 ‘대접하는’ 내가 됩니다.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엄연하기에, 몸을 고추세울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그러니 나를 살려주고 있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무조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때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고자 해서가 아니라,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온몸을 던지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만물을 받치고 있는 땅과 같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매김하게 됩니다.
 때문에 정진으로 출가하고 있는 삶은 이로부터 거침없게 됩니다. 비로소 유한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무한 공급의 원천인 아미타(阿彌陀) 즉 무한생명 무한광명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100m 달리기 선수들이 출발할 때의 자세를 봅시다.
 무릎을 펴거나 허리를 세우지 않습니다. 머리는 땅에 닿을 듯하게 한껏 웅크렸다가는 쏜살같이 튀어나갑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굽힌 만큼 얻어지는 반동력(反動力)을 이용하고자 함입니다.
 이와 같이 땅으로 상징되는 세상을 향해서 “나무(南無)!”하는 것은 결코 비굴한 마음에서가 아닙니다. 충분히 받을 준비를 하려는 것이고, 받은 대로 발휘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대자연(大自然)에 절을 하고, 만나는 분들에게 절하는 것은 끝내 나의 참생명 자리에 절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무한히 공경하고 대접할 때 우리는 분리되어 있는 개별생명으로부터 해방됩니다. 나라는 입장, 너라는 입장의 대립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업은 아이 삼 년 찾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이를 찾으려면 고개만 돌리면 되는데, 다른 데를 쳐다보느라 바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딜레마입니다. 고개만 돌리면 그만인 것을 말입니다.
 이제 그만두십시오. 업고 있는 아이를 찾아 헤매지 마십시오. 그대로 살면 됩니다. ‘나는 원래부터 부처님생명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사실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정진(精進)으로 참생명의 깃발을 삼는 우리가 무엇이 두려워서 얄팍한 계산만 하고 있어야 합니까? 이 세상이 사바인가, 극락(極樂)인가 하는 것은, 단지 내 선택에 달려있을 따름입니다. 더 이상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다음을 기약할 것도 없습니다.

 눈 밝은 사람은 보십시오. 귀 열린 사람은 들으십시오.
 지금 무한한 성취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끝없는 찬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정진하는 당신을 향해서·.·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법사님P1040263.JPG


 


 

1개의 댓글

Profile
나무
2011.04.14
감사합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대중법문] [종료 : 4월, 넷째주 대중법회] 생사해탈을 위하는 진실한 마음 - 범열 법사 문사수 2023.02.12 2449
[대중법문] 불교신앙의 기초_깨달음과 믿음 문사수 2009.09.07 28145
공포로부터의 해방 1 문사수 2014.06.17 28009
바라는 만큼 채워지지 않는게 괴로움 실상 [무량수경3] 1 문사수 2010.02.13 27999
아는 만큼 보이는 세계(법장비구 31번째 원) 문사수 2011.09.17 27988
정진으로 생명의 깃발을 올려라 1 문사수 2011.04.14 27957
극락세계는 밥 한끼 먹는 그 순간에 전개 [무량수경7] 1 문사수 2010.03.21 27910
어떻게 살아야 하나? 1 문사수 2010.03.12 27908
[대중법문] 법우님, 불안하십니까? 문사수 2009.09.14 27812
놀래거나 겁내지마라 2 문사수 2010.02.24 27802
상대적 가치관 무너진 후 열린 세계가 정토 [무량수경10] 1 문사수 2011.02.27 27797
부처님일대기를 시작하며... 문사수 2013.03.04 27779
[부처님일대기] 유성출가상(3) 문사수 2013.03.31 27693
[부처님일대기] 유성출가상(1) 문사수 2013.03.30 27638
전법傳法하여 부처님생명 성취한다 1 문사수 2010.03.19 27585
감사함 알고 살아갈 때가 극락왕생한 삶 [무량수경8] 1 문사수 2010.04.09 27547
계를 받는다는 것은.... 문사수 2009.11.24 27533
업業과 운명運命 1 문사수 2010.03.06 27527
[정토예불문6] 겁내지 마! 우린 부처야! 문사수 2014.04.10 27462
참생명의 인간에게 공양한다 문사수 2010.05.01 27429
자신이 싫어질 때 문사수 2010.08.20 27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