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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해방의날 우란분재

문사수 2010.08.13 조회 수 24626 추천 수 0
생명해방의 날 우란분재盂蘭盆齋

거꾸로 매달린 생명…
멍하니 서있는 것도 오랜 시간동안 서있으면 고통스러울 판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피가 머리로 한꺼번에 몰려서 제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울 것은 자명합니다. 여기에 항상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려야 하는 아귀고(餓鬼苦)까지 함께 한다면 이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한 상황이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조상님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조상님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생명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상이 이럴진대 어떠한 조치가 필요하겠습니까?
말할 필요도 없이 풀어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명을 ‘풀어서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 바로 우란분재(盂蘭盆齋)이며, 이것이 우리가 우란분재에 동참하여 널리 공양(供養)올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우람바나(Ullambana)’의 음역(音譯)으로서 거꾸로 매달려있다[도현(倒懸)]’는 의미인데, 이 우란분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 신통제일(神通第一)로 알려진 목련(目連)존자가 어느 날 돌아가신 어머니 청제부인(靑提夫人)의 행방이 궁금하여 신통력으로 찾아보았는데, 천상에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아귀지옥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목련존자는 부처님께 어머니를 구해 주십사 간곡히 청합니다.
제자 목련으로부터 애틋한 사연의 전말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은 말씀을 일러주십니다.
“너의 어머니는 인과법(因果法)에 의해 그처럼 아귀가 되어 거꾸로 매달린 채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음력 7월15일에 칠세(七世)의 조상으로부터 부모까지, 그분들을 위하여 백미(百味)의 갖가지 음식을 모든 생명들께 공양하라.”
이에 목련은 부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마침내 어머니를 천도(薦度)해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청제부인은 왜 아귀지옥에서 거꾸로 매달려있을까요?
청제부인은 한 아들의 어머니였기에, 게다가 성인(聖人)이 될 정도의 출중한 인물을 키워낸 어머니였기에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죄가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순(矛盾)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기울이는 정성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입니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인색하게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자식만은…”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오직 자기 자식만을 위하다 보니 다른 사람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실로 물불을 안 가리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얼떨결에 탐욕의 죄를 범할 수밖에 없기에,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죄가 깊은 것입니다.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받는[自作自受] 인과(因果)의 법칙에는 누구라도 예외가 없기에 제 아무리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로서도 어머니가 받아야 될 과보(果報)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통력을 발휘하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인과법에 있어서 이러한 되지도 않는 망상(妄想)은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은 바대로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여 모든 자식들은 어머니가 아귀지옥에서 거꾸로 매달리는 과보를 받더라도 그냥 뒷짐 지고 있는 수밖에 없을까요?
자식을 낳기 위한 산고(産苦)도 예삿일이 아닌데, 자식을 행복하게 해 주려다가 아귀고(餓鬼苦)까지 받아야 한다면 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우리의 어머니가 고통 받는 한, 그 어머니의 소생인 우리도 결코 편안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어머니에게서 말미암기에 어머니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실로 자식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목련존자에게 내리신 가르침을 우리도 따라야 합니다. 자식만을 생각하다 보니 베풂에 인색하시던 당신들의 닫힌 마음을 활짝 열어드려야 합니다. 자기 자식만을 생각하다가 일어난 탐욕을 제거하고 나면, 그 탐욕의 결과인 어머니의 괴로움은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죄는 실체가 없다[罪無自性]’고 하셨습니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결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공양(供養)을 올리라고 권하시는 것입니다. 시방(十方)의 모든 생명들께 공양을 올리게 되면 “내 자식만… 내 가족만…” 하면서 ‘나의 무엇’만을 위하던 닫힌 마음의 결과인 죄의 껍질을 벗게 됩니다.
그러므로 공양을 올린다는 것은 단순히 요식적(要式的) 행위에 머물지 않습니다. ‘나의 무엇’만을 앞세운 나머지 ‘나’라는 껍질 안에서 굳어져가는 생명을 위한 생명해방운동인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베풂의 현장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금생(今生)을 다하여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빚은 우리 자신의 생(生)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의 부모님…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 보면, 끝없이 이어져온 생명의 흐름 가운데 얼마나 많은 빚이 누적되어 왔겠습니까? 조상들로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생명에 그 어떤 죄의 그림자도 드리워져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란분재를 모시는 것은 단순히 조상님들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생명흐름은 조상님들로부터 우리에게로 도도(滔滔)하게 이어져 온 것이기에 우란분재를 모심으로써 우리의 생명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무한히 살려지고 있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 비록 이 은혜의 백천만분의 일도 되지 못할 정성이라도 힘써 공양을 올려야 합니다. 따라서 우란분재의 의미는 이러한 공양의 의미를 확인하고, 확인한 바대로 살겠노라는 생명해방의 선언인 것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염불행자(念佛行者)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염(念)하는 공덕(功德)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 공덕으로 조상님들께서 천도되는 것입니다.
염불의 공덕은 상대적 기준에 의한 측정을 뛰어넘는 것이기에 조상님들께서 천도되느냐, 안되느냐를 따질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날마다 염불하는 염불행자에게 있어서는 날마다 천도입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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