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淨土), 둘이 아닌 세계
우리는 ‘정토신앙(淨土信仰)을 하는 문사수법회(聞思修法會)’라고 합니다.
오늘은 정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토를 <하늘나라>와 같은 의미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정토는 죽어서 가는 세계가 아닙니다.
정토가 만약에 지상세계(地上世界) 밖에 따로 어딘가에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정토가 아닙니다.
정토란 그 자체가 절대이기 때문입니다. 무한이기 때문에 정토입니다.
이러한 절대와 무한을 불교에서는 ‘불이(不二)’라고 합니다. ‘둘이 아닌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둘이 아닌 것, 이것이 바로 정토입니다.
아미타경에 ‘극락세계는 여기에서부터 서쪽으로 십만억불토를 지난 세계에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서쪽이라고 하니까 동서남북 중에서 어떤 한 방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쪽이나 남쪽, 북쪽에는 없고 다만 서쪽에만 있는 것으로 해석하니까 정토라는 것도 상대유한의 한 세계인 것처럼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서쪽이란 그런 방위에 한정되어 있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서남북이란 지구가 가만히 있을 때 동서남북이지요.
하지만 지구는 계속 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향이 일정하다고 볼 수 없죠.
그런 의미로 여기에서 서쪽이라는 말은 ‘모든 것이 귀결되는 방향’ 을 말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극락을 서쪽에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생사세계가 떨어진 곳’, 그곳을 서쪽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동쪽과 다른 의미의 서쪽이 아닙니다.
또한 ‘십만억불토를 지나서 극락이 있다’고 했는데, 십만억 불토란 우리들로서 생각할 수 없는 수량을 의미합니다. 수량의 범위 내에 있다는 것은 유한세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십만억불토를 지났다는 얘기는 유한적인 사고를 벗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상대세계가 아닌 세계를 의미합니다.
‘거기에 한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를 극락이라고 한다’.
이 말은 절대무한의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세계의 연장선상이 아닌, 생사윤회의 세계 밖에 있는 세계를 극락이라고 합니다.
그 ‘극락세계에는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계신다’고 했는데, 아미타라고 하는 특정한 모양을 가진 인격자가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아미타부처님이란 분은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모양을 가지고 누가 오길 기다리고 있는 분이 아닙니다.
상이 없으시면서 계신 분, 즉 무한인 존재를 말합니다. 시간적으로 무한이기 때문에 무량수(無量壽), 공간적으로 무한이기 때문에 무량광(無量光)이므로 아미타입니다.
그러면 무량수, 무량광하고 부처님이 계신 세계하고 따로따로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에는 의정불이(依正不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依)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말하고, 정(正)이란 환경세계를 사는 주체를 말합니다.
사는 주체와 주체가 사는 세계가 따로따로가 아닌 하나라는 말입니다.
즉 극락세계하고 아미타부처님하고는 둘이 아닙니다.
아미타부처님이 곧 극락이고 극락세계가 곧 아미타부처님인 것입니다.
때문에 부처님에게는 특별한 모양이 없고 한계가 없습니다. 부처님 말고 중생이 있을 수가 없고 극락 말고 다른 세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미타부처님만이 꽉 차있는 세계, 온 우주 법계가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밖에 무엇인가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니까, 우리가 있는 이 세계가 괴롭기 한량없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나서 늙고 병들고 죽어요. 마음속에는 갈등이 있고 시기 질투가 있어서 괴로움이 많습니다. 이 세계를 벗어나려면 상대유한의 세계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상대유한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을 ‘생사해탈(生死解脫)’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벗어나서 정토에 가야 합니다.
정토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절대무한의 세계이고 아까 이야기한대로 말하면 둘이 아닌 세계입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데, 이 세계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간다고 하면, 그것은 둘인 세계지 둘이 아닌 세계가 아닙니다.
둘이 아닌 세계가 바로 극락입니다. 절대라고 합니다.
대립이 없고, 상대가 없는 세계입니다.
법문들으신 소감, 댓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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