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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물을 먹으면 우유를 낳고, 독사가 물을 먹으면 독을 뿜는다

문사수 2015.01.28 조회 수 15446 추천 수 0

열반경은 “소가 물을 먹으면 우유를 낳고, 독사가 물을 먹으면 독을 뿜는다”고 말씀합니다. 물의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을 문제 삼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독사가 사람을 물어서 중독시키니 나쁘다고 단정하기 쉽지만, 독사가 물을 먹어서 독을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모습입니다. 소가 물을 먹어서 맛있는 우유를 공급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듯이 말입니다.
물론 물 자체는 분명히 우유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독도 아닙니다. 다만 먹는 주체에 따라서 우유가 되거나 독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인과법(因果法)에 따라서 벌어지는 결과 그 자체일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삶의 현장을 떠난 어떤 말이나 행동도 쓸데없는 짓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을 택하고 있는가?”만이 분명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런 물음들에 걸맞은 답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머리를 감싸 쥐고 힘들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삶을 마주하면, 쉽게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원인에 따른 결과 즉 인과(因果)의 도리가 역력하기 때문입니다. 벌어지는 삶은 적어도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나타난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마주하면 자연히 원인을 알게 됩니다. 원인을 알게 되면, 그에 따른 결과를 두려워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세상의 인심은 허무주의를 도리어 강화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행복을 노래하고, 성공을 찬양하기에 바쁩니다. “무엇이 참된 행복이며, 성공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 자체를 한가한 사람의 넋두리로 치부하려고 합니다.
온통 “어떻게?”를 위한 구호와 명분으로 가득합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된다”거나 “어떻게 하면 내가 출세를 한다”는 담론이 갖가지의 변형을 통해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종교의 얼굴을 하고 있든, 명상의 유형을 취하든 갖가지의 효용가치를 내세웁니다.
“그야말로 이것이 바로 비법이다!”
“물질적인 성취를 이루게 하는 게 신의 뜻이다!”
“병을 고치는 기적이 일어난다!”
막상 그것이 돈이 되었던 벼슬이 되었던, 누리는 당사자가 상대적인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끝내 윤회하고 만다는 지적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마침내는 허무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을 물질적인 잣대로 삶을 규정합니다.
이와 같은 주고받음의 거래관계로 해서 빚어질 괴로움의 반복은 윤회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거래 당사자인 나를 기준으로 해서 행복과 성공을 가늠하는 한, 행복의 상대인 불행과 실패를 반드시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주하지 않으면서 자기 삶을 외면한다고 해서 윤회가 멈추는 게 아닙니다. 동시에 바람직한 결과를 꿈꾼다고 해서, 삶의 실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담배를 끊기 위해 금연초를 피우는 사람과 같습니다.
담배가 몸에 나쁘다고 하는데, 바로 끊기는 뭣하고 해서 굳게 마음을 먹고 비싼 돈을 들여 금연초를 구입합니다. 그리고는 열심히 금연초를 태웁니다. 그런데 하도 열심이다 보니, 어느새 금연초에 중독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금연초를 끊기 위해서 노심초사합니다. 담배를 피우는 습관을 연장해서 또 다른 담배인 금연초로 옮겨가며 윤회하면서 말입니다.
모든 현상은 그물코와 같이 서로서로 얽혀있습니다. 우주 또는 세계라는 그물 전체에는 수많은 관계와 관계를 통해서 환상과 환상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다 보면 환상을 실상으로 간주하는 믿음이 형성 되고, 그 믿음이 켜켜로 쌓이다가 진실로 굳어져서는 삶의 선택을 헷갈리게 하기도 합니다.
모든 현상은 생각에서 말미암기에 환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종의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생각을 앞세우면 자기가 만들어놓은 환상의 지배를 받기 마련입니다. 환상을 환상인 줄 모르는 생각의 장난으로 윤회하면서 말입니다.
이와 같은 자기모순을 확연하게 아는 사람이라면 주춤거릴 새가 없습니다. 삶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것저것 따질 여지없이 곧 바로 수정합니다. 자기 삶의 실상을 듣고 생각하니, 반드시 수정할 수밖에 없는 문사수(聞思修)하는 원리가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법문은 지극히 간단합니다.
나를 앞세우는 삶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진단에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나를 앞세우면 반드시 너라는 이름의 사람이나 사건 또는 사물과 대립하며 갈등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내 멋대로 살지도 못합니다. 적당히 참고 견디려고 하니, 괴로움은 점점 더 가중치가 붙습니다. 잠시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또 다른 괴로움을 겪으며 윤회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참으며 살지 않으면 안 되기에 사바세계라고 이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힘들기 짝이 없는 사바세계는 참으로 있는 곳일까?
사바세계란, 나를 앞세운 결과 마주하는 괴로운 세계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삶은 괴로움에 불과하다는 식의 허무주의(虛無主義)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괴로움이라는 결과로서의 현상을 마주하며 자기모순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나를 앞세우는 삶이 알고 보니 괴로움으로 가득한 사바세계입니다.
그러니 사바세계라는 삶의 인식은,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알면서 머뭇거리지 않으리라는 결단의 순간으로 전환합니다.
마침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된 삶의 실상임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참으로 알고 보니, 괴로움의 윤회가 없는 극락세계야말로 나의 참생명이 살아가는 유일한 삶의 기회라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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