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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수聞思修

불교를 만나다
세수하다가 코 만지기 보다 쉬운 게 불교라는데, 왜 어렵다할까?
  


앞에서 알아 보았듯이
부처님의 깨달으신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생명은 
본래부터 완전한 덕상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덕상을 '부처님생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입니다.

당연히 나뿐만이 아니겠죠?
모든 생명은 부처님생명인 것입니다.

 


 

본래 부처라고 하니깐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감춰져 있는 본래 면목을 드러내야합니다. 예를 들어 황금이 진흙 속에 묻혀있으면 황금인줄 모릅니다.
진흙을 닦아낼 때 마침내 황금의 본래 면목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생명이면, 부처님생명답게 되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부처님생명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삶이 불교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참생명의 완전성을 모르고 스스로 못난이라고 생각하는 이를 중생이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생이 노력해서 부처된다는 말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중생이 부처 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본래 부처님생명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쯤에서 부처님생명에 대한 정의를 좀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생명은 절대생명(絶對生命)이어야 합니다.
절대(絶對)란 대립이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합니다.
끊는다고 할 때, 대립할 상대가 있어서 끊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본래부터 대립할 상대가 없습니다. 그래서 절대입니다.
만약에 부처님생명과 대립하여 상대적으로 있는 생명이 존재한다면,
부처님생명도 상대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따라서 부처님생명이 절대생명이라는 말은 부처님생명 말고 또 다른 생명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부처님생명만이 온 우주에 참으로 있는 실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불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