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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불교

세 가지 독
독화살은 맞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맞았다면 다시는 맞지 말아야죠!
 

한편 다행스러운 것은 행복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서기 전에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 답은 ‘나’는 행복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질문이 답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쯤에서
‘나’란 존재에 대한 물음을 다시 한번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나’인가?

어렵게 생각하지 않더라고 일단 이 몸뚱이는 ‘나’라고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 몸뚱이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 있는 건 ‘나’가 아니라 '남'이지요.
한 발 더 들어가서 몸뚱이가 ‘나’라고 생각하는 정신 작용도 나에 포함됩니다.

이 몸뚱이와 정신 작용으로 파악된 ‘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참 허무합니다.
왜냐하면 우선 몸뚱이만 하더라도 이 몸을 유지하려면 '나' 밖에 있는 것을 섭취해야만 하니까요.
안 그러면 '나'를 유지시킬 수가 없으니, '나'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필연적으로 '나' 밖에 있는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국가로 보면 독립국이 아니라 식민지라고 할까요.
정신 작용도 마찬가지로 '나'의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가공하고 융합해 놓은 결과물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존재의 실상에 대한 무지(無知)와 그리고 외면으로부터
‘나’에 대한 집착이 생깁니다.
이 집착심은 중독성이 강한 세 가지 독(毒)으로 나눠서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물질적인 욕심[탐(貪)]이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음으로 인한 성냄[진(瞋)]이요 
그리고 진실에 대한 눈감음 즉 어리석음[치(癡)]입니다.

스스로 이 독에 중독된 채 혼미하게 살아가는 존재를 중생(衆生)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번연한 자기 존재의 실상을 보지 못하거나 또한 보고도 외면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 가지 독에 중독된 ‘나’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안다면, 바로 당장 해야할 일은
독을 제거하는 일 말고 더 급한 일은 없겠지요.